삶의 궤적이 곧 예술이 된 배우 김혜자

살아온 이력만으로도 타인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이 존재한다. 이번 아르떼 매거진 11월호 커버스토리의 주인공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써 내려온 듯한 배우 김혜자다. 6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카메라 앞에 서 왔지만, 그녀에게 연기는 단순한 직업적 업무가 아닌 삶 그 자체였다. 그녀는 연기를 하는 순간 비로소 온전한 생동감을 느끼며, 연기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산소통에 비유하기도 했다.

새로운 대본을 마주할 때마다 그녀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한 인간의 생애를 온전히 그려내기 위해서는 결코 쉬운 과정이 있을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탈진할 정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녀는, 한 인물을 연기한 뒤 긴 시간을 거쳐야만 다시 다른 존재로 깨어날 수 있다. 스스로를 '엄마로서 0점'이라 평하며 가족보다 연기를 우선시했던 엄격한 자기 절제의 시간들이 쌓여, 이제는 동료 배우들이 우러러보는 꿈의 대상이 되었다.

스크린으로 돌아온 거장과 건반 위의 노장

9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작품 <여전히 찬란하게>에서 그녀는 흐르는 시간의 얄궂음을 덤덤하게 고백한다. 하루가 지독하게 길게 느껴지다가도 10년, 20년이라는 세월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는 그녀의 말은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눈빛과 호흡, 그리고 단 한 줄의 대사에 온 생애를 담아내는 그녀의 연기는 진정한 예술이 지닌 힘이 무엇인지 증명한다.

한편, 김혜자와 같은 연배를 지닌 거장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11월 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홀로 건반 앞에 서는 순간도 있지만, 오랜 벗들과 음악적 교감을 나누며 80대 중반인 지금까지도 무대를 지키는 그녀의 모습은 경이롭다. 평생을 음악에 헌신해 온 노장을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커다란 정서적 위안을 선사할 것이다.

기술의 시대, 인간의 손끝이 지닌 고귀한 가치

현대 사회는 점차 속도를 높이며 기술 혁신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통적인 아날로그 감성의 상징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조차 AI와 기술적 진보를 주요 화두로 삼았다. 모든 것이 신속하고 손쉽게 생산되는 시대 속에서,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힌 찰나의 표정과 손끝의 떨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이들의 존재는 더욱 소중해진다. 온 힘을 다해 삶을 살아내고 표현하는 행위만큼은 인공지능이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세계적인 미술 시장의 흐름인 프리즈 런던과 아트바젤 파리의 현장 소식도 함께 전한다. 파리 페어는 예상치 못한 시위로 인해 조기 폐막했으나, 런던을 압도하며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부상할 저력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뉴욕, 상하이, 자카르타에서 전해진 예술계 뉴스도 담았다. 2026년을 앞둔 시점에서, 다가오는 12월에는 더욱 풍성한 축제의 이야기로 찾아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