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 음악가의 고유성에 던지는 질문
인간 음악가만이 지닌 독보적인 영역이 과연 실존하는가. 도쿄대학교 공학 석사 학위를 보유한 일본의 피아니스트 스미노 하야토(31)는 이러한 근원적인 의구심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음악적 창작과 연주를 수행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을 연구하며 창의성이 오직 인간만의 전유물이라는 기존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스미노는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을 앞두고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2026년 후반을 기점으로 세상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며 인간 음악가만의 고유성을 정의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문제가 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는 악기와 컴퓨터의 진보를 AI의 발전과 동일한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견해를 밝히며, 최근에는 인간 음악가에게만 허락된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전제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쇼팽의 궤도를 따라가는 현대적 변주
음악 전공자가 아님에도 2021년 쇼팽 국제 콩쿠르 준결선에 진출하며 이름을 알린 스미노는, 현재 피아니스트의 역할을 넘어 작곡과 즉흥 연주를 병행하는 창작자로 활동 중이다. 그는 공학적 지식을 소리의 생성과 울림의 원리를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하며 클래식의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다. 이번 리사이틀의 주제인 '쇼팽의 궤도(Chopin Orbit)'는 지난 1월 소니 클래시컬에서 발매한 그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을 바탕으로 구성된다.
공연에서는 쇼팽의 대표곡들과 더불어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자작곡들이 연주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쇼팽의 연습곡 '에올리언 하프'를 리디안 선법으로 변주한 '리디안 하프'와 '빗방울 전주곡'을 재해석한 '빗방울 후주곡' 등이 포함된다. 스미노는 쇼팽의 음악이 자신의 음악적 여정에서 오랜 시간 중심축 역할을 해왔음을 밝히며, 쇼팽 특유의 미의식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창의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연주와 작곡의 상호작용, 그리고 한국과의 인연
스미노에게 연주와 작곡은 서로를 강화하는 관계다. 그는 연주자로서 체득한 '몸의 감각'이 작곡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공연장에서 직접 느끼는 울림과 손끝의 움직임이 작곡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작곡을 시작한 이후에는 악보를 분석하는 시야가 넓어졌다. 특정 음이 배치된 이유를 고찰하며 작곡가의 사고 궤적을 추적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는 향후 작곡에 더 집중하며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편성 곡 작업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쇼팽과 리스트처럼 연주, 작곡, 즉흥 연주를 모두 수행하는 것이 과거 음악가들에게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고 덧붙였다.
올해 1월 한국인 여성과 결혼 소식을 전한 스미노는 한국과의 정서적 유대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24년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자작곡 '세 개의 녹턴' 중 첫 번째 곡인 'Pre Rain'을 완성했다. 당시 일본보다 훨씬 추웠던 한국의 겨울과 비와 눈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회상한 그는, 음악을 통해 교감하기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 관객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어 학습을 통해 일상 대화가 가능한 수준에 도달한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많은 한국 팬들과 직접 소통하기를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