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특수가 불러온 삼성전기의 역대급 성장
국내 전자부품 시장을 이끄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3분기 성적표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삼성전기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서버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고부가가치 반도체 패키지기판인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의 수요가 폭발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반면 LG이노텍은 3분기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6조 원 선을 돌파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양사 모두 환율 하락이라는 대외 변수를 맞이한 상황에서, AI 관련 고부가 제품의 성장세와 개별 사업부의 수익성 차이가 실적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기는 28일 공시를 통해 올해 3분기 연결 기준 매출 3조 7,633억 원, 영업이익 6,910억 원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30%, 영업이익은 165%나 급증한 수치로, 매출과 이익 모두 분기 기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시장의 기대치였던 6,450억 원을 상회했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고성능 부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외형 성장과 내실 경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부품 수요 폭발한 삼성전기, 사업부별 동반 성장
부문별로 살펴보면 컴포넌트 사업부의 3분기 매출은 1조 8,830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6% 늘어났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인 서버, 네트워크, 전원장치용 제품을 중심으로 모든 응용처에서 매출 확장이 나타났다. 특히 GPU(그래픽처리장치)와 ASIC(주문형반도체)의 고성능화 추세가 MLCC 수요를 견인했다. 고성능 반도체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MLCC의 초소형화 및 고용량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면서 고부가 제품 중심의 시장 확대가 가속화되고 있다.
패키지솔루션 사업부 역시 9,390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년 동기 대비 58%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이는 AI 가속기와 서버용 CPU, 네트워크 장비 등에 들어가는 고부가 반도체 기판 공급이 늘어난 결과다. 이와 함께 자율주행 및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고성능 기판 수요가 실적을 뒷받침했다. AI 열풍이 MLCC를 넘어 반도체 기판 영역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여러 사업부가 동시에 성장세를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기는 4분기에도 빅테크 기업들과의 MLCC 장기 공급 계약에 대응하고, 서버용 고부가 기판 공급을 늘려 성장 동력을 이어갈 방침이다.
매출 6조 돌파했지만 이익 급감한 LG이노텍
LG이노텍은 외형적인 규모는 키웠으나 수익성 측면에서는 큰 타격을 입었다. 3분기 매출은 6조 3,67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6% 증가하며 처음으로 6조 원 시대를 열었지만, 영업이익은 948억 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53.4% 급감했다. 영업이익률 또한 지난해 3.8%에서 1.5%로 하락했으며, 이는 증권가 전망치인 2,029억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수익성 악화의 주된 원인으로는 환율 급락이 꼽힌다.
LG이노텍 측은 상반기에 높은 환율을 기준으로 원재료를 매입했으나, 실제 제품이 양산되고 출하된 3분기에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면서 수익 구조에 부담이 가중됐다고 설명했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사업 구조 역시 중장기적 과제로 지적된다. 핵심인 광학솔루션 사업 매출은 5조 4,041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6% 성장하며 전체 매출의 약 85%를 차지했다. 북미 고객사의 신제품 양산 덕분에 모바일 카메라 모듈 공급은 늘었지만, 특정 고객사의 판매량이나 신제품 출시 스케줄에 실적이 크게 좌우되는 구조적 취약점은 여전하다.
사업 다각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가 관건
주력 사업의 계절적 변동성과 고객사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LG이노텍의 급선무다. 패키지솔루션 매출은 4,818억 원으로 10.1% 늘었고, 모빌리티솔루션 매출은 4,811억 원으로 6.8% 증가했다. 회사 측은 RF-SiP, FC-CSP, FCBGA 등 고부가 기판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두 사업의 합산 매출은 광학솔루션 매출의 20%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기존 주력 사업의 변동성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신사업의 규모와 수익성을 동시에 키워야 한다.
이에 따라 LG이노텍은 FCBGA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PC CPU용 제품 양산을 시작으로 2028년까지 AI 가속기 및 서버용 고다층·대면적 기판 시장에 단계적으로 진입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공장 증설과 국내외 투자를 검토 중이다. 광학솔루션 분야에서는 공정 자동화와 부품 내재화로 원가를 낮추고,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차량용 AP 모듈, 디지털키, 자율주행 및 로봇용 피지컬 AI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투자가 부품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주는 동시에 포트폴리오에 따른 수익성 방어력 차이를 드러냈다고 분석하며, 중장기적으로 AI 반도체 기판 등 신사업의 수익성을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향후 실적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