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를 뒤흔든 120억 원 규모의 사기극

2004년 뉴욕 노들러 갤러리에서 발생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 한 점이 약 830만 달러, 한화로 약 120억 원에 거래되며 전 세계 미술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이는 이른바 ‘노들러 갤러리 위작 스캔들’의 핵심적인 사건이었다. 잭슨 폴록과 윌렘 데 쿠닝 등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상징하는 거장들의 미공개 유작으로 둔갑한 가짜 작품 60여 점이 무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장에 유통되었다. 이 대형 사기극의 발단은 뉴욕 퀸스에 위치한 한 허름한 차고로부터 시작되었다.

수학 교사 출신의 중국인 무명 화가 페이셴 첸은 찻잎과 철물점에서 파는 페인트를 활용해 거장들의 화풍을 모방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가짜 그림 앞에서 억만장자 수집가들과 저명한 감정사들은 오히려 숭고함과 영성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렸다. 미술사상 최악의 사기극으로 불리는 이 실화는 예술적 가치가 작품 자체의 본질에서 기인하는지, 아니면 자본과 명성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한지에 대해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트바르코프스키의 실험적 무대, 한국 초연

이러한 도발적인 화두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 연극 ‘로스코’가 한국 관객과 만난다. 폴란드 출신의 연출가 우카시 트바르코프스키가 선보이는 이 작품은 오는 11월 13일부터 15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시그니처 홀에서 국내 초연을 진행한다. 트바르코프스키는 독보적인 미디어 연출과 감각적인 비주얼로 유럽 공연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한 연출가다.

그는 지난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SF 연극 ‘디 임플로이’를 통해 파격적인 미디어 활용을 선보이며 국내 평단과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거장 크리스티안 루파의 조연출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무대를 단순한 텍스트 재현의 장소가 아닌, 디지털 기술과 영화적 기법, 비주얼 아트가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실험실’로 변모시켜 왔다. 무대와 그 이면을 동시에 노출하며 관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만드는 그의 독특한 문법은 유럽 전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복제와 원본의 모호한 경계

이번 연극은 화가 로스코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뒤섞은 ‘ROHTKO’라는 제목을 사용해 원본과 복제의 불분명한 경계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극본은 한국 출신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에 등장하는 ‘산자이(Shanzhai)’ 개념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단순한 모방을 넘어 변형과 재창조를 의미하는 이 동양적 사유를 위작 스캔들과 결합하여 정교한 팩션(Faction) 극본을 완성했다.

무대에는 파비앙 레데가 설계한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 설치되며, 다국적 배우들이 라트비아어, 영어, 중국어, 폴란드어를 사용하여 연기한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라이브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포착되어 대형 스크린에 송출되며, 카메라는 객석에서 볼 수 없는 세트 내부의 은밀한 공간까지 파고든다. 루보미르 그젤라크의 테크노 사운드와 화려한 네온 비주얼이 어우러진 극장은 약 4시간 동안 갤러리와 클럽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감동의 실체에 대해 집요하게 묻는다.

2022년 라트비아 초연 이후 파리 오데옹 극장과 런던 바비칸 센터 등을 거치며 라트비아 연극상 5관왕 및 이탈리아 ‘프레미 우부’ 최우수 해외공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예술적 가치를 재고하게 한다. 생성형 AI가 거장의 화풍을 모방하는 시대에, 무대 위 실연과 스크린 속 복제 영상의 교차는 진품이 가진 아우라와 작가의 서명이 지닌 본질을 관객 스스로 성찰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