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공급망 불안에 맞선 전사적 대응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8개월 넘게 지속됨에 따라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 등으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격히 요동치고 원유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이다. 중동산 원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우, 석유 수급 차질에 대비한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로 부상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이러한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비상 수급 체계를 즉각 가동하고, 비축유 활용 및 해외 생산 원유의 국내 반입을 통해 공급 안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월 초 취임한 손주석 사장은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석유위기대응단’을 구성하며 위기 관리 속도를 높였다.

손 사장은 기존에 시설 임대에 주력했던 국제공동비축 물량에 대해 비상시 우선구매권을 행사함으로써 국내 수급 안정에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정유사가 운송 중인 원유와 전략비축유를 서로 교환하는 ‘원유 스와프(SWAP)’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특히 중동발 공급 불안에 맞서 해외 생산 원유를 국내로 직접 반입하는 조치를 역대 최초로 추진하며, 기존 비축 자산과 해외 생산 기반을 실제 수급 안정화에 연결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해외 자원개발을 통한 수익 기반 및 공급망 강화

석유 비축이 에너지 안보의 근간이라면, 해외 자원개발은 공사의 핵심 수익원이자 장기적인 공급 기반 역할을 수행한다. 공사는 현재 총 13개국에서 17개의 석유개발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일일 약 12만 8000배럴의 원유를 생산 중이다. 2025년 기준 예상 매출액은 약 3조 1000억 원 규모로, 전체 매출의 약 90%가 해외 석유개발 사업을 통해 창출되고 있다.

주요 사업지 중 하나인 베트남 15-1광구는 공사가 탐사 단계부터 주도권을 쥐고 참여해 유전 발견을 이끌어낸 곳이다. 2003년 10월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한 이 광구는 현재 하루 약 3만 4000배럴의 원유와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알다프라 사업 역시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2012년 UAE 국영석유회사인 ADNOC과 공동으로 사업을 시작해 2019년부터 생산에 돌입했으며, 현재 일일 약 4만 3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알다프라 사업은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억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달성하며 수익성을 입증했다.

재무 구조 개선과 AI 기반의 경영 혁신

재무 건전성 확보는 공사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공사는 올해 실적 반등을 위해 석유개발 사업의 원가를 개선하고 자본투자(CAPEX)를 최적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투자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경제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불필요한 경상경비를 절감하여 수익 구조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수급 기반 확대를 위한 투자도 병행된다. 공사는 약 2000만 배럴 규모의 석유비축 시설을 증설하고, 중동 산유국 등을 대상으로 한 국제공동비축 확대 계획을 수립했다. 이는 글로벌 지정학적 위기에 상시 대응할 수 있는 비축 역량을 강화하여 국가 에너지 안보 체계를 격상시키기 위한 조치다. 이와 함께 조직 개편과 인사 혁신도 진행 중이다. 공공사업본부를 신설하여 비축 기능을 보강하고 해외 석유개발 조직을 재편해 안보 중심의 운영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성별이나 출신보다 역량을 우선시하는 인사 원칙에 따라 차세대 관리자를 발탁하고 핵심 인재를 배치하고 있다.

경영 혁신을 위한 인공지능(AI) 도입도 가속화되고 있다. 오피넷 서비스의 24시간 운영을 위한 AI 고객센터(AICC)와 석유정보 데이터 플랫폼 구축이 진행 중이며, 안전 관리를 위한 지능형 석유비축기지 전환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특히 지하 비축기지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적용해 실시간 상태를 관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AI 로봇 순찰을 도입하고 있다. 또한 석유 탐사와 생산 분야에서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생산량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글로벌 에너지 위기라는 파고 속에서 안정적인 수급 대응과 AI 전환(AX) 경영혁신을 통해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