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여정과 잃어버린 안식처

번잡한 도심 속 화분에서 평온하게 지내던 달팽이 한 마리가 성체가 된 후, 자신에게 최적화된 보금자리를 찾아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온 세상을 떠돌아도 마땅한 집을 찾기란 쉽지 않다. 습도가 너무 높거나 지나치게 건조한 곳, 혹은 공간이 너무 협소하거나 지나치게 광활한 곳들이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살을 에는 추위가 몰아치거나 숨 막히는 더위가 있는 곳, 심지어 유령이 나올 듯한 공포를 주는 장소들 때문에 달팽이는 한 시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도망쳐 나온다.

결국 지친 달팽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음을 터뜨린다. 이 거대한 세상에 정작 자신을 위한 공간 하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엄마가 있는 도시의 화분이나 안전했던 알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눈물로 만들어진 웅덩이를 내려다보게 되는데, 그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딱 알맞은 크기와 온도, 습도를 갖춘 아늑한 집이 달려 있음을 발견한다. 달팽이는 결국 자신에게 완벽한 그 집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정책에 가로막힌 조카의 꿈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현실의 조카 이야기로 이어진다. 두 아이를 키우는 조카는 가족에게 적합한 주거지를 찾아 스스로 길을 나섰다. 지방에서 중학교를 다니다 꿈을 위해 수도권 이모 집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조카는, 이후 지방 대학을 거쳐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니며 잦은 이사를 경험했다.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는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겨야 했다. 남편의 직장과 가까운 지방에 전세를 살면서, 네 식구가 넉넉히 지낼 수 있는 낡은 집을 더 먼 곳에 전세 끼고 마련해두었던 조카에게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왔다. 변동된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대출 문턱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자금 조달 계획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조카는 이제 살고 싶은 곳에 머물 수도, 기존에 살던 곳에 계속 머물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였다.

청년 주거 현실과 정책의 아이러니

그림책 <집 없는 달팽이>의 주인공은 칠레 출신이지만, 이를 한국의 청년들에게 투영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옥탑방의 혹독한 기후나 빗물이 들이치는 반지하, 외부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고시원은 오늘날 우리 달팽이들이 마주하는 실제 거주지다. 만약 다른 맥락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자신의 집을 이미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스스로를 발견하기 위해 고난을 겪는 성찰의 과정'으로 미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자신의 집을 이미 지니고 태어났다면 그것은 '금수저'라는 특권의 영역이다. 고시원과 반지하를 전전해야 하는 현실을 성찰의 과정으로 포장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다. 눈물을 흘리는 과정은 필요할지언정, 태어난 것 자체를 후회할 정도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한편에서는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후회할 정도로 지원을 축소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출산 장려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작금의 상황은 지독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물ness 물론 모든 정책이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정책 집행 과정에서 선의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다. 예외를 허용하면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린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유예를 두는 정책적 융통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성호 전 법무부 장관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과업 완수보다 약자의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듯, 우리 사회의 달팽이들이 겪는 고통을 세심하게 헤아리는 정책 운용자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