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증강의 역설과 유럽의 딜레마
과거 춘추전국시대를 목격한 맹자는 군사력 강화에만 매달리는 국가들이 오히려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현상을 경고하며, 백성을 먼저 살핀 뒤 군대를 키워야 한다는 '양민후병(養民後兵)'의 원칙을 왕도주의의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이는 민생을 돌보지 않는 과도한 군비 확장이 결국 '과비유환(過備有患)'이라는 화를 불러온다는 통찰이었다.
오늘날 전례 없는 혼란에 직면한 유럽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민생 개선과 군사력 강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이 고전적인 국정 운영의 난제에 봉착해 있다. 지난 9월 중순 프랑스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의 불길은 독일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배경에는 국가별로 차이는 있으나 고물가 현상과 열악한 교육 환경, 공공 서비스의 질적 저하, 그리고 심화되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 이러한 위기의 뿌리에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연합(EU)이 국방 예산을 급격히 늘리면서 발생한 재정 지출의 불균형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폭증하는 국방비와 무너지는 사회 안전망
수치로 나타나는 국방비의 증가세는 매우 가파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통계에 따르면, EU의 국방비는 2022년 2,582억 달러 수준에서 2025년 4,606억 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방위청(EDA)이 2026년 7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올해 EU의 국방 지출은 5,290억 달러에 달해 2022년과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늘어난 상태다.
향후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2025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은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 및 안보 분야에 투입하기로 뜻을 모았다. EU 27개국 중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키프로스, 몰타를 제외한 대부분이 나토 회원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 영향력은 막대하다. 유럽의회는 나토 소속 EU 국가들의 총국방비가 2035년에 핵심 국방비로만 약 9,010억 달러를 기록할 것이며, 사이버 안보와 사회기반시설 보호, 민방위 등 광범위한 안보 지출을 포함하면 그 규모가 약 1조 2,87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치적 불안과 극우 세력의 부상
국방비의 급격한 팽창은 필연적으로 교육, 복지, 의료 예산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진다. 독일 시민들이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바로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는 기초적인 기반이 국방비 증액으로 인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군비 부담이 커질수록 유럽의 사회적 혼란은 심화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극우 세력이 득세할 가능성 또한 예견된 시나리오다.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의 정권이 바이든 행정부에서 트럼프 행정부로 교체되면서 미국의 전략적 계산이 변함에 따라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러시아를 저지하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장기화나 러시아에 유리한 종결은 유럽에 정치적 불안과 극우화, 그리고 러시아와의 영구적인 적대 관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안겨줄 수 있다.
결국 유럽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차원에서 러-우 전쟁의 종결을 도모해야 한다. 동시에 전후 유럽의 안보 체계를 새롭게 설계함으로써 과도한 군비 지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확보된 재원을 다시 교육과 민생 분야로 돌려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