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운용·가상자산까지 뚫린 금융권 보안망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악용한 해킹 위협이 금융권 전반으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넘어 금융투자업계와 보험사, 가상자산거래소에 이르기까지 금융 생태계 전체가 공격 대상이 된 형국이다. 특히 이번 공격 과정에서 북한의 인터넷 주소(IP)가 사용된 정황이 드러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28일 대신증권은 해킹 사고로 인해 고객 3만 8,490명의 개인정보와 신용정보가 유출되었다고 공표했다. 이는 앞서 발생한 예가람저축은행의 유출 규모(4만 3,246명)에 이어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대신증권은 지난 17일 투자 일임 비대면 계좌 개설과 연계된 서버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한 즉시 공격에 활용된 IP와 우회 접속 IP를 차단하고 금융당국에 보고했다. 이후 금융보안원과 협력하여 열흘간 6만여 건의 신호를 전수조사한 끝에, 지난 26일 고객 정보가 유출되었음을 최종 확인했다. 유출된 항목은 고객명, 이메일, 주소, 통신ID, 은행명, 암호화된 입출금 계좌번호, 대신증권 종합계좌번호 등 총 8가지다. 대신증권 측은 법령에 의거해 피해 발생 시 배상을 진행할 방침이다.
연쇄적 해킹 피해와 북한발 공격 가능성
금융권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빗썸 역시 해킹 피해 사실을 금융당국에 새롭게 알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격자가 외부에서 계정을 생성한 뒤 일부 업무용 웹 시스템의 자료를 무단으로 내려받은 것으로 파악 중이다. 앞서 지난 25일에는 같은 그룹 계열사인 미래에셋생명의 고객 청약시스템과 홈페이지 일부에서도 침해 사고가 발생해 당국에 신고된 바 있다. 국내 2위 가상자산거래소인 빗썸도 전날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에서 비인가자의 접속 흔적을 발견하고 이날 당국에 보고했다. 빗썸 관계자는 이번 침해가 가상자산 거래를 담당하는 핵심 전산시설이 아닌 임직원 업무지원시스템에 국한되었으며, 자산 이전이나 부정 결제에 쓰일 수 있는 지갑 주소 등의 정보 유출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권을 겨냥한 공격에 북한 IP가 활용된 정황이 포착되며 사태가 엄중해졌다. 금융당국은 지난 21일 금융보안 통합관제시스템인 ‘퍼스트(FIRST)’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소를 포함한 금융사들에 ‘북한 IP의 금융권 대상 스캔성 접근 관련 유의사항’을 공문으로 전달했다. 조사 결과, 북한에 할당된 다수의 IP에서 21일 오전 3시부터 공문 발송 전까지 금융권 시스템을 탐색하려는 시도가 약 440만 4,10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달 초 발생한 해킹 사태 이후 북한 IP 사용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북한 자체 웹사이트 40여 곳이 20~21일 사이 접속 장애를 겪었던 점을 들어, 외부 세력이 북한 시스템을 해킹한 뒤 이를 경유해 국내 공격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며 성급한 단정은 경계했다.
보안 점검 실효성 논란과 당국의 대응
사태가 악화되자 금융위원회는 유영준 디지털금융정책관 주재로 긴급점검회의를 소집했으며, 금융감독원도 현장 점검에 나섰다. 이찬진 금감원장은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 간담회에서 AI가 해킹 수단으로 쓰이면서 보안 취약점 탐지와 동시다발적 공격이 일상화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금융회사의 자율방어 체계 구축을 강력히 주문했다. 당국은 전자금융거래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상자산 업계에도 은행권 수준의 보안 및 사고 대응 태세를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점검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금융위가 공개한 555개 금융회사의 자체 점검 결과에 따르면, 425개사가 보안 수준을 ‘적정’하다고 보고했으나 불과 2주 만에 연쇄 해킹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국이 강조했던 ‘대외 시스템 인증·인가 누락 주의’와 ‘외부 연결 시스템 전수 파악’ 지침이 무색하게 대신증권의 계좌 개설 서버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웹 시스템, 빗썸의 그룹웨어가 잇따라 뚫렸다.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사후 제재보다 사전 예방 중심의 전환과 범정부 차원의 현장 확인을 강조했다. 한편 국가수사본부도 이번 증권사와 가상자산거래소 해킹 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