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의 한 의료기관에서 간호사가 국산 비만 치료 신약인 ‘에페’를 정리하고 있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한 국내 최초의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에페’가 이날부터 일부 병의원을 대상으로 처방을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윤건호엔도내과의원을 방문한 직장인 김 모 씨(50)는 ‘에페(성분명 에페글레나타이드)’ 처방을 두고 상담을 진행했다. 그는 과거 마운자로를 통해 8kg을 감량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지속적인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해 투약을 중단한 상태였다. 그는 마운자로 4주분 가격이 용량에 따라 2.5mg은 약 34만 원, 5mg은 약 40만 원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체중 감량 효과에는 만족했으나 장기적인 약값 감당이 어려웠다며, 한국인을 대상으로 개발된 국내 첫 비만약인 에페가 마운자로만큼 뛰어난 효능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시장 재편의 핵심은 효과와 비용

이번 에페의 출시로 인해 기존 마운자로가 주도하던 비만 치료제 시장의 판도 변화가 주목된다. 환자들이 약제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체중 감량의 확실성과 매달 지출되는 경제적 비용이다. 기존 약물로 효과를 보았음에도 비용 문제로 치료를 중단했거나, 다른 대안을 찾는 환자들을 에페가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가 시장 안착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미약품은 지난 22일 에페의 첫 물량을 출하했으며, 사전 주문을 완료한 의료기관에 순차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29일부터 일부 의료기관에서 처방이 가능해졌으나, 초기 물량의 한계로 인해 전국 병원과 약국에 동시 공급되는 방식은 아니다. 공급 범위는 단계적으로 넓혀갈 계획이다.

현장의 반응은 환자들의 높은 관심으로 나타났다.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윤건호 윤건호엔도내과의원 원장은 진료 환자가 아주 많은 상황은 아니었음에도 벌써 한두 명의 환자가 에페에 대해 문의해 왔다고 밝혔다. 다만 약을 처방받기 위해 환자들이 줄을 서는 등의 혼잡한 상황은 아니었다.

위고비·마운자로와 비교한 가격 경쟁력

에페의 첫 4주 공급가는 12만 9,800원 수준이다. 2mg과 4mg을 각각 2주씩 사용하는 기준이며, 서울 일부 의원에서의 실제 소비자 가격은 16만 원 선으로 안내되고 있다. 이는 위고비의 시작 용량인 0.25mg의 4주분 가격이 21만 원인 것과 비교하면 초기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다. 다만 비급여 의약품 특성상 의료기관이나 약국마다 가격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별도의 진료비나 처방료가 추가될 수 있다.

용량을 늘릴 경우 비용 구조는 달라진다. 위고비의 4주분 평균 가격은 0.5mg 약 26만 원, 1mg 약 28만 원, 1.7mg 약 36만 원, 2.4mg 약 41만 원이다. 마운자로는 5mg 기준 약 39만 원이며, 7.5mg과 10mg은 각각 약 55만 원에 달한다. 에페의 경우 6mg 4주분 소비자 가격이 일부 의원에서 28만 원으로 책정됐다. 유지 용량인 10mg의 4주분 공급가만 29만 9,2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첫 달의 가격만으로 전체 장기 치료비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체중 감소 효과 역시 중요한 선택 기준이다. 한미약품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결과, 에페 투여군의 40주 평균 체중 감소율은 9.75%로 나타났다. 이와 비교해 위고비 2.4mg은 68주간 평균 14.9%, 마운자로 5mg은 72주간 평균 15.0%의 감소율을 보였다. 다만 각 임상의 대상자 구성과 설계, 시험 기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 수치만으로 약제 간의 우열을 단정할 수는 없다.

유지 요법으로서의 가능성과 시장 전망

윤 원장은 에페가 감량 이후의 유지 요법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종 목표 체중에 도달한 후 유지 단계에 진입할 때, 약제를 변경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에페가 서서히 작용하며 효과가 오래 지속되는 특성을 지녀 체중 유지에 유리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다만 윤 원장은 실제 전환 효과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데이터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K-비만 치료제’라는 에페의 정체성이 소비자 선택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후보물질의 발굴부터 상업화 단계까지 국내 기술로 전 과정을 수행했다는 점과 한국인 대상 임상 데이터를 확보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업계 관계자는 에페가 시장 구도를 바꾸려면 낮은 초기 비용으로 유도한 관심을 지속적인 처방으로 이어가야 하며, 환자가 느끼는 효과와 부작용, 유지 단계의 비용을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장 규모도 급팽창하고 있다.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만 치료제 시장은 8,200억 원 규모였으나, 올해 상반기에만 마운자로(7,444억 원)와 위고비(2,170억 원)의 유통 실적이 9,614억 원을 기록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말 전체 시장은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시장 성장과 함께 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임신부나 소아·청소년에게 처방되거나 비만이 아닌 이들이 미용 목적으로 찾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식약처가 해당 계열 약물을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하려 하고 있으나 규제 심사는 진행 중이다. 김민선 대한비만학회 이사장은 정상 체중인 사람이 미용을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