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평화와 공존을 향한 새로운 발원

경남 합천 해인사 탑마당에서 지난 29일, '해인사 장경도감 대장경 판각 고불식(告佛式)'이 거행되었다. 이번 고불식은 부처님께 중대한 과업의 시작을 고하는 의식으로,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을 새롭게 제작하는 대규모 사업의 서막을 알리는 자리였다. 해인사 주지 혜일 스님은 발원문을 통해 경쟁보다는 배려를, 불안보다는 희망을, 갈등보다는 화합을 선택하는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모두가 뜻을 모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13세기 고려의 정신을 현대적 난제 해결로 확장

'다시 새기는 대장경, 인류를 향하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행사는 13세기 고려 시대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당시 선조들은 16년(1236~125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몽골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호국의 염원을 담아 대장경을 완성했다. 해인사는 이러한 과거의 원력을 계승하여,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전쟁과 기후 위기 등 전 지구적 과제들을 해결하고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50년 대계, 전통 기술 전승과 수행의 가치

해인사는 이번 판각 사업을 향후 50년 이상 지속될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한다. 과거 1,700명의 각수(刻手)가 약 70년에 걸쳐 대장경을 만들었듯, 현재 활동 중인 10여 명의 각수들이 후진을 양성하며 이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23년 설립된 장경도감 산하 판각학교의 졸업생과 스님 등 1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된다. 특히 이번 사업은 단순한 복제를 넘어, AI와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글자를 새기는 수행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위한 준비로 해인사는 산벚나무 약 300톤을 확보해 건조 작업을 진행 중이며, 사찰 부지에 돌배나무 2,000그루를 식재하기도 했다.

종교계와 정관계 인사 2,000여 명 참석

이날 고불식 현장에는 해인총림 방장 학산대원 대종사와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비롯해 김도형 문화체육관부 종무실장, 박완수 경남도지사, 김윤철 합천군수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또한 수많은 신도가 함께하며 2,000여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대장경 재판각의 역사적인 시작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