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넘지 못할 소설가의 성역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정교하게 모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깊은 내면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제15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데이먼 갤것(Damon Galgut) 작가는 28일 한국 취재진과의 만남에서 AI 기술이 인간의 마음을 흉내 낼 수는 있으나, 인간 본연의 내면세계를 다루는 영역은 대체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인 갤것 작가는 이번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지향점과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문학이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해 심도 있는 견해를 피력했다. 갤것 작가는 소설을 집필하고 독자가 이를 읽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고 마음을 연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등장인물이 겪는 내면적 고통에 깊이 공감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소설가를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이 다소 순진하게 들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게 믿으며 그러한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남아공의 불평등과 도덕적 성찰
갤것 작가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정책) 이후의 남아공 사회를 배경으로, 역사적 변혁의 흐름 속에서 개인이 지녀야 할 윤리적 책임과 긴장 관계를 작품에 담아왔다. 그는 남아공에 잔존하는 불평등 문제와 개혁의 실패를 폭로하는 동시에, 이를 인종이나 계급의 문제를 넘어 죄책감과 도덕적 무력감이라는 인류 보편의 주제로 확장해 왔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실을 직시하며 인간의 도덕성을 성찰해 온 그는, 남아공의 역사적 변화를 '절반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경제적 권력이 국민에게 온전히 분배되지 못해 경제적 소외가 지속되는 상황을 지적하며, 사회적 실패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막연한 낙관론이나 성급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현재 마주한 결핍과 실패의 실체를 직시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역사와 개인 사이의 균형 잡기
문학적 접근 방식에 대해 갤것 작가는 작품의 전면에 정치나 역사를 내세우고 싶지 않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역사와 정치가 삶의 배경이자 과정으로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정치적 영역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을 지향하면서도, 자신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남아공이라는 토대와 분리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개인의 삶과 역사적 맥락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1963년생인 갤것 작가는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첫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소설가뿐만 아니라 극작가, 배우, 연출가로서도 폭넓은 활동을 펼쳐왔으며, 1982년 '죄없는 계절'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굿 닥터', '낯선방에서', '북극의 여름', '약속' 등 다수의 대표작을 발표하며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