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로 변해온 한국인의 운동 풍경
토요일 저녁, 한강 수변공원의 산책로는 자전거 도로와 분리되어 있어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러닝의 성지다.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이들의 모습에는 20대 청년부터 백발의 노년층까지 다양한 세대가 섞여 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인들은 마치 마라토너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에어로빅이나 등산, 헬스, 복싱, 요가, 필라테스, 발레핏, 골프를 거쳐 이제는 러닝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열광하는 운동 종목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과거에는 단순히 땀을 흘리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면, 이제는 날씬한 체형과 탄탄한 근육을 만드는 것이 주요 목표가 됐다. 더 나아가 자신의 기록을 측정하고 이를 타인과 공유하며, 운동을 하나의 취향이자 연결된 문화로 향유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56세 이경진 씨의 삶을 되짚어보면 한국 생활운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의 첫 운동은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에어로빅이었다. 당시 동네마다 생겨난 에어로빅 교실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동작을 반복하며 땀 흘리던 기억은 그에게 생생하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운동의 영역이 가정 내로 확장됐다. 이소라, 조혜련 등 유명 연예인들의 다이어트 비디오가 유행하며 '홈트'가 대중화되었고, 이 씨 역시 비디오를 빌려 집에서 다이어트를 실천했다. 2000년대에는 체력 관리와 여가를 동시에 잡는 등산과 체지방 관리를 위한 헬스가 주류를 이뤘다. 이후 유연성과 균형을 중시하는 요가와 필라테스가 등장했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개인 트레이닝(PT)을 통해 신체 변화를 기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팬데믹이 가속화한 골프와 러닝의 열풍
코로나19 팬데믹은 운동 트렌드에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실내 활동이 제한되고 해외여행이 어려워지자 넓은 야외 공간을 활용하는 골프가 급부상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전국 골프장 이용객은 2019년 약 4,170만 명에서 2020년 약 4,674만 명으로 12.1% 늘었으며, 2021년에는 처음으로 5,000만 명 선을 돌파했다. 반면, 러닝은 운동화 한 켤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접근성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러닝 크루와 마라톤 대회가 활성화되면서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에서 함께 즐기는 활동으로 변모했다. 앱을 통해 기록을 단축하거나 하프, 풀코스 마라톤에 도전하는 구체적인 목표 설정은 운동을 지속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2년 전 러닝을 시작한 송수빈(47) 씨는 시작 5개월 만에 하프마라톤에 도전할 정도로 몰입했다. 그는 통증과 불안이 줄고 기분이 좋아지는 '러너스하이'를 경험하며 새로운 삶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 증가에 따른 부상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서울에서 개최된 하프마라톤 대회 중 20대 여성 참가자가 결승선 인근에서 쓰러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며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 역시 과도한 경쟁과 대회 참가를 경고했다. 송 씨 또한 최근 발목과 무릎 통증으로 인해 러닝을 쉬고 있으며, 현재는 재활스포츠센터에서 근력 운동을 하며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중이다.
새로운 도전, 근력과 유산소를 결합한 '하이록스'
러닝의 열풍을 뒤이어 이제는 '하이록스(HYROX)'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러닝에 근력 운동을 결합한 형태로, 최근 샤이니 민호 등 유명 연예인들이 방송을 통해 소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27세 장수진 씨는 크로스핏 체육관에서 하이록스 릴레이에 참여하며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2017년 독일에서 시작된 하이록스는 1km 달리기와 8가지 기능성 운동(스키에르그, 썰매 밀기, 버피 점프, 로잉, 파머스 캐리, 샌드백 런지, 월볼 등)을 번갈아 수행하는 경기다. 총 8km를 달리며 근력과 심폐지구력을 동시에 겨루는 이 방식은 표준화된 과제를 갖춰 일반인도 기록 단축에 도전하기 적합하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출연자이자 체육관 운영자인 홍범석 씨는 하이록스가 일반인도 선수처럼 경기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특정 종목의 선수 출신 여부보다 꾸준한 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에서도 하이록스 대회를 준비하는 크로스핏 체육관이 늘어나는 추세다. 홍 씨는 하이록스가 힘든 만큼 완주 시의 성취감이 매우 크며, 꾸준히 노력한다면 연령대별 입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유행하는 종목은 변할지라도, 어제보다 나아진 자신을 확인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는 운동의 매력을 지속시키는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