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증하는 의료비와 무너지는 재정 기반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의료 서비스 보장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가계의 비용 부담을 적정하게 조절하기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에 나선다. 국무총리 직속 의료혁신위원회는 지난 29일 서울 중구 소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제11차 회의를 개최하고, '지속가능한 보건의료비 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대정부 권고안'을 논의했다. 이는 인구 고령화 추세와 더불어 복합적인 만성질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의료 수요 및 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경상의료비는 216조 6000억 원 규모로 집계되었으며, 이는 전년 대비 6.5% 상승한 수치로 국내총생산(GDP)의 8.5%에 달한다. 전체 의료비 중 가계가 직접 지출하는 비중은 30.9% 수준이다. 향후 고령화로 인해 의료 수요는 더욱 확대될 전망인 반면,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로 인해 건강보험료에 의존하는 기존의 재정 기반은 점차 약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3대 전략을 통한 의료 패러다임 전환

위원회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민 건강성과 제고', '가치 기반의 효율적 지불', '지속가능한 책임 및 재정 체계'라는 3대 핵심 전략을 도출했다. 우선 기존의 사후 치료 중심 의료 체계를 예방과 상시적인 건강관리 중심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국민이 거주지 인근의 일차의료기관을 통해 꾸준히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건강검진을 통해 발견된 위험 요인이 실질적인 예방과 치료로 직결되도록 유도한다. 특히 일차의료기관이 수행하는 상담과 만성질환 관리, 의료서비스 연계 기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권고했다.

또한 노년층이 자신이 살던 지역사회 내에서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와 요양, 돌봄, 재택의료 및 재활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연계 제공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의료기관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의뢰 및 회송 시스템을 개선하는 한편, 지역별 의료 역량과 접근성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의료 취약지의 여건과 국민의 선택권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AI 도입과 혼합지불체계로의 진화

의료비 지불 방식의 개편도 주요 과제로 다뤄졌다.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치료재료 등이 제공하는 실제 효과와 가치를 지속적으로 평가하여, 그 결과를 합리적인 가격 결정과 보상 체계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와 검증된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기술을 평가 도구로 활용하며, 지출 효율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은 필수의료 및 높은 건강가치를 지닌 분야에 우선 배치할 계획이다.

기존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필수의료 유지 역량과 일차의료의 핵심 기능, 의료의 질 및 환자의 건강성과를 종합적으로 보상하는 '혼합지불체계'로의 발전을 도모한다. 이는 환자의 중증도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시범사업과 성과 평가를 거쳐 단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아울러 비급여 항목과 실손보험을 건강보험 체계와 연계하여 국민의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재정 관리 강화와 국가 책임 확대

재정 관리 측면에서는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공공과 민간을 아우르는 전체 의료비 지출 규모를 파악하고, 중기적인 전망과 관리 방향을 수립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의료비 총액에 일률적인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주요 보건의료 정책이 국민 건강, 의료 접근성, 가계 부담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 및 사후에 평가하도록 하며, 건강보험 재정은 물론 비급여와 민간보험에 미치는 영향까지 조사하여 공개할 방침이다.

또한 건강보험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소득과 부담 능력에 따른 보험료 형평성을 개선하여 안정적인 재원 조달 기반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등 기존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역할도 재정립할 예정이다. 정기현 의료혁신위원장은 "보건의료비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투자이자 국가의 중요한 책무"라며 "이번 권고안이 한정된 재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의료비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