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BJFEZ) 내 산업 지형이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단순한 제조와 유통의 결합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물류 산업이 중심에 서고 있다. 과거 화물을 적치하고 이동시키는 데 그쳤던 공간들이 이제는 가공과 조립, 포장 공정까지 한곳에서 수행하는 첨단 산업의 요충지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설의 물리적 크기보다 운영 방식의 고도화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BGF리테일과 롯데마트가 각각 첨단 물류 거점의 가동을 시작했으며, 현대글로비스와 LX판토스는 부산신항 배후지에 대규모 복합물류 허브를 구축 중이다. 여기에 한중 합작법인의 신규 투자까지 가세하며, 물류가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물류 거점의 등장
지난 9월 16일, 부산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에 들어선 BGF리테일의 ‘부산 물류센터’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에 이르는 연면적 12만8072m² 규모의 이 시설에는 BGF리테일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600억 원을 투입했다. 이곳은 친환경 물류 시스템과 첨단 공급망관리(SCM) 기술을 적용한 편의점 업계 최대의 물류 거점이다.
한 달 앞서 가동을 시작한 롯데마트의 ‘제타스마트센터’ 역시 주목할 만하다. 연면적 3만9467m² 규모인 이 센터는 영국 오카도의 스마트 플랫폼(OSP)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도입했다. AI와 로봇 기술을 기반으로 부산, 창원, 김해 등 인근 지역의 배송 서비스를 혁신하고, 지역 농산물의 판로를 넓히는 동시에 약 2000명의 고용 창출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복합물류 기능의 확장과 대규모 투자
기술적 진보가 물류의 방식을 혁신한다면, 복합물류는 그 역할 자체를 재정의한다. 부산신항 배후단지의 물류센터들은 이제 단순 보관과 운송을 넘어선다. 항온항습 기능은 물론 가공, 조립, 포장 서비스를 한 공간에서 제공하며 화물이 이동하는 과정마다 새로운 가치를 덧입히고 있다.
LX판토스는 창원시 진해구 웅동지구 서컨배후단지 내에 ‘신항에코물류센터’를 건립 중이다. 약 12만5000m²의 부지에 1000억 원을 투자하는 이 사업은 배후단지 내 단일 면적 기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해상과 항공, 철도를 연계하는 것은 물론 가공과 조립, 포장 등의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며, 현재 공정률 90%를 기록해 내년 1분기 완공을 앞두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또한 웅동배후단지 2단계 구역에 복합물류센터 조성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진해경자청은 지난해 10월 경남도, 창원시와 함께 현대글로비스와 1800억 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맺은 바 있다. 9만4938m² 부지에 화물 분류, 라벨링, 포장 등 고부가가치 기능을 갖춘 센터를 계획 중이며, 2028년 완공을 목표로 부지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와 제조 산업의 시너지
해외 자본의 유입도 물류 기능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경남도와 부산진해경자청은 지난 9월 중국 상하이에서 태웅로직스가 참여하는 한중 합작법인과 3800만 달러(약 503억 원) 규모의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이 합작법인은 웅동배후단지 2단계의 약 3만4949m² 부지에 2028년까지 물류센터를 신축해 탱크컨테이너 관련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이미 1단계에서 물류센터를 운영 중인 태웅로직스의 신규 투자는 단지 전체의 복합물류 기능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제조 분야의 외국인 투자도 활발하다. 지난 4월 부산시와 부산진해경자청은 중국 화통케이블그룹의 자회사인 부산케이블앤엔지니어링과 3900만 달러(약 516억 원) 규모의 직접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이들은 지사외국인투자지역에 제3공장을 세워 전기차용 와이어링 하네스와 산업용 특수케이블, 전력·통신용 케이블의 생산 역량을 확대할 방침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물류센터의 가치 기준이 면적이나 처리량에서 기술력과 기능성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와 로봇이 효율을 높이고 가공·조립 공정이 부가가치를 더하면서, 항만 배후단지는 제조와 유통, 물류가 융합된 첨단 산업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박성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은 기업 투자가 지역에 정착해 새로운 산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역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