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 발사 넘어 AI 연산 인프라로 사업 중심 이동

우주 탐사와 위성통신을 주력으로 삼았던 스페이스X가 인공지능(AI) 연산 자원을 공급하는 인프라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 대규모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기업에 대여하는 이른바 '네오클라우드' 사업이 기존의 로켓 발사 및 스타링크 사업의 매출 규모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의 2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스페이스X가 지난 22일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익명 처리되었던 최대 고객 '고객 B'의 정체는 AI 기업인 앤스로픽으로 밝혀졌다. 앤스로픽은 스페이스X의 전체 매출 146억 달러 중 약 34.5%인 50억 달러(약 6조 7,000억 원)를 차지하며, 이는 미국 연방정부 매출 비중인 16.6%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앤스로픽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전년 동기 10% 미만 수준에서 급격히 상승했다. 이는 AI 모델 개발을 위한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막대한 연산 자원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스페이스X의 새로운 핵심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변화는 매출 구성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인프라 부문인 '슈퍼 인텔리전스'는 3분기 동안 약 76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전체의 52%를 점유했다. 이 부문은 로켓과 스타링크를 포함한 기존 사업군을 추월했을 뿐만 아니라, 분기 기준 첫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161조 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과 GPU 임대 사업

스페이스X는 지난 6월 테네시주 멤피스에 건립한 대형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앤스로픽과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해당 계약을 통해 32만 5,000개의 엔비디아 GPU를 임대하며, 월 임대료는 12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앤스로픽이 지난 26일 제출한 기업공개(IPO) 신청서에 따르면, 스페이스X와의 컴퓨팅 자원 활용 계약 규모는 2029년까지 최대 1,205억 달러(약 161조 원)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오는 12월 공급이 마무리되면 월간 지급액은 31억 달러(약 4조 1,000억 원)까지 증액될 전망이다.

스페이스X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연산 자원을 빌려주는 클라우드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나 구글 같은 기존 클라우드 강자들과 협력하면서도, 동시에 자사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독특한 행보를 보인다. 이는 대규모 컴퓨팅 파워와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분석된다. 특히 AI 모델 시장에서 잠재적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들과도 협력한다는 점은 매우 이례적인 대목이다.

특정 고객 의존도 심화와 2027년 해지권 리스크

인프라 사업의 가파른 성장세 이면에는 특정 고객에 대한 높은 의존도라는 위험 요소가 존재한다. 앤스로픽이 스페이스X 인프라 매출의 약 3분의 2를 책임지고 있어, 만약 계약이 해지되거나 규모가 축소될 경우 실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계약 조건에는 앤스로픽이 2027년 1월과 3월부터 각각 최소 90일 전에 사전 통보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2029년까지 예정된 1,20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이 확정된 미래 수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앤스로픽이 자체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거나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로 연산 자원을 분산할 경우, 스페이스X는 막대한 규모의 데이터센터와 장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가동률 저하라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설비 가동률의 하락은 곧 수익성 악화로 직결된다. 이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언급한 네오클라우드 업계의 위기론과도 궤를 같이한다. 머스크는 최근 데이터센터 외에 별도의 수익 모델이 없는 기업은 자금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며, 200여 개의 네오클라우드 업체가 도태되거나 인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와 로켓 사업을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보유하고 있어 타 업체와는 차별화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인프라 사업을 차세대 성장축으로 키워가는 상황에서, 앤스로픽과의 파트너십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하느냐가 향후 사업 지속성을 결정할 핵심 관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