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절개를 지킨 80년의 역사
신사참배에 맞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고려신학교가 개교 80주년을 맞이했다. 충남 천안에 위치한 고려신학대학원(원장 기동연 교수)은 지난 29일, 학교의 여덟 번째 십 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와 기념강좌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기 속에서도 신앙적 절개를 포기하지 않았던 선배들의 발자취를 기리고, 그들이 남긴 신앙 유산을 현대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고려신학교의 뿌리는 1946년 9월 20일, 주남선과 한상동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역사에 있다. 당시 이들은 신사참배로 인해 훼손된 한국교회의 신앙적 정체성을 회복하고, 올바른 신학을 전파할 목회자를 양성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교의 설립은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가 출범하기에 앞서 선행된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의 영광을 넘어 회개와 비전으로
이날 예배에서 신진수 예장 고신 총회장은 요엘 2장 12~20절을 바탕으로 ‘내게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신 총회장은 단순히 과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목회자들이 외적 성장이나 성공에 매몰되지 말고, 말씀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교회 내의 분열과 다툼을 회개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고려신대원은 80주년 비전 선포문을 통해 구체적인 시대적 과제도 제시했다. 재학생과 동문들은 시대의 우상 앞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개인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안락함보다는 십자가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들은 물질주의와 기술 지배주의를 경계하며, 인공지능(AI) 시대 속에서도 성경과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한 목회자 양성 및 다음 세대 신앙 교육에 집중할 것을 다짐했다.
선배들의 삶과 신학적 과제
기념강좌에서는 학교의 기틀을 닦은 주요 인물들의 삶이 집중 조명됐다.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렀던 주남선·한상동 목사는 해방 후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신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박윤선 목사는 초기 14년 동안 신학생들을 교육하고 성경 주석을 집필하며 신학적 토대를 구축했으며, 손양원 목사는 설립기성회 총무를 맡아 학교의 안정적 정착에 기여했다.
이성호 고려신대원 교수는 설립 취지서에 나타난 한국교회의 자성적 태도를 언급했다. 당시 교세는 확장 중이었으나 일제의 강요에 신앙을 지키지 못했다는 반성이 신학교 설립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규모의 확장보다 신앙과 신학의 깊이가 중요함을 역설하며, 교육의 양보다 질에 주목할 것을 당부했다. 유해무 교수는 한상동 목사의 신앙적 결단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박윤선 목사와의 결별 등 인물적 한계를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권력 다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박윤선 목사의 신학을 실제 목회 현장에 적용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학문과 목회의 괴리를 지적하며 개혁주의 신학에 충실한 목회를 주문했다. 또한 노회와 총회가 권력 기관이 아닌, 개별 교회의 뜻을 모으는 회의체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박 목사의 정치 원칙을 소개했다. 정주채 목사는 손양원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며, 평소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순교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고려신대원 총동창회는 80주년을 기념하는 ‘800동문·800교회·8만원 후원 운동’을 통해 모금된 금액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고려파교회연구소는 역사 자료와 논문집, 발전헌금을 기부했으며, 전국여전도회연합회도 후배들을 위한 발전헌금을 전달하며 교육 지원에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