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품귀 현상이 불러온 중고 D램 재활용 열풍
인공지능(AI)용 메모리 반도체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고성능 제품에 대한 수요가 몰리며 구형 D램의 공급난이 발생하자, 중고 D램을 활용하는 시장이 새롭게 형성되는 동시에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의 재기를 노리는 모양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중고 D램을 재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존에 사용되던 PC나 서버, 스마트폰 기기에서 메모리 칩을 추출한 뒤, 세척과 성능 검사 등 재생 과정을 거쳐 다시 유통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재생된 칩들은 주로 저가형 스마트폰 모델에 탑재된다.
대만 테크뉴스를 비롯한 외신들은 약 5~6년 정도 사용된 저전력 D램인 'LPDDR4' 중고 제품이 주된 거래 품목이라고 전했다. 이들 제품의 가격은 신제품 대비 40~50%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다. 현재 중국 시장에는 각국에서 사용하던 IT 기기나 미국의 데이터센터에서 나온 D램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중국 기업들이 급등하는 메모리 가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저렴한 재활용 칩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올해 3분기 말 이후의 생산 목표치와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DDR4 공급 급감과 가격 역전 현상
스마트폰 업체들이 중고 제품까지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범용 제품인 DDR4의 공급량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세계적인 메모리 제조사들이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나 서버용 제품 위주로 생산 라인을 재편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의 자료를 보면, 내년도 DDR4 공급량은 올해와 비교해 약 20%가량 감소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구형 제품인 DDR4의 가격이 차세대 제품인 DDR5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는 기현상을 낳았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DDR4의 계약 가격은 24% 상승하며, 같은 기간 20%의 상승률을 기록한 DDR5를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소부장 업계의 반등과 정부 지원
메모리 업계가 고수익 제품 생산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업계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잡았다. 일본반도체제조장치협회(SEAJ)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일본산 반도체 제조장비의 판매액은 전년 동기 대비 48.2% 급증한 6290억 4000만 엔(약 5조 3011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두 달 연속으로 세워진 사상 최대치다.
일본 경제산업성 또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 출자 기업인 라피더스에 3년간 4000억 엔(약 3조 3500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는 등, 소부장 분야의 경쟁력을 제조 공정 전반으로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는 일본이 전 세계 반도체 소재 시장의 50%, 장비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비록 제조 주도권은 양보했을지라도 강력한 소부장 역량을 통해 여전히 시장에서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