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의 핵심 책무는 타인과 함께 선을 실천하는 것
“군자에게 있어서 타인과 함께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중대한 일은 없다.” 이는 고전 <맹자>에 기록된 문구다. 여기서 언급되는 군자는 높은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직에 있는 관리들을 지칭한다. 따라서 이 구절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수행해야 할 가장 본질적인 임무는 타인과 협력하여 선을 실천함으로써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선한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는 단순히 자기 자신만 선을 이루고 이를 실천하는 것을 최종적인 지향점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관점은 공자를 비롯해 역대 수많은 유학자들이 공유했던 가치관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통된 목표는 천하를 함께 선하게 만드는 ‘겸선천하(兼善天下)’에 있었다. 다만 맹자는 세상이 너무나 혼탁하여 성현의 도가 제대로 통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미련을 갖지 말고 관직에서 물러나 홀로 선을 지키는 ‘독선기신(獨善其身)’을 택해야 한다는 예외적 단서를 덧붙였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는 개인의 치열한 노력만으로는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실천을 통한 선한 영향력의 확장
하지만 독선기신의 삶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맹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선함을 확장하여 타인에게까지 미치게 하는 것을 우선시했다. 이를 일컫는 표현이 바로 ‘추기급인(推己及人)’이며, 이는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중시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맹자가 학문을 닦는 목적은 단지 개인의 삶을 선함으로 견고하게 만드는 데 머물지 않았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존재이며, 특히 학문을 수행하는 지식인이라면 공동체가 함께 단단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가 모든 이에게 선한 영향력의 행사를 삶의 절대적 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만 개인의 단단한 삶이 비로소 정립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이러한 실천이 결여된다면, 개인이 추구하는 단단함은 그저 아집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설령 선한 영향력의 행사와 관계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튼튼하게 쌓아 올릴 수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직자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월급을 받는 기간만큼은 반드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외면해서는 안 되며, 그러한 가치를 위해 애쓰는 이들을 결코 부정적으로 바라봐서도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