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이라크 파병 메모, 23년 뒤 이 대통령도 파병 고심
23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라크 추가 파병 방침을 결정하던 순간의 고민이 담긴 친필메모가 공개되면서, 현재 이 대통령도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로 비슷한 딜레마에 놓인 사실이浮出水面되었다. 명분이 부족한 전쟁, 동맹국인 미국의 파병 요구, 국내의 반대 여론이라는 큰 틀의 상황이 두 대통령을 닮게 만든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고민
25일 경향신문은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관련 친필메모 11건을 확보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에서 기록한 메모들로, 파병을 둘러싼 당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이 마주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를 들여다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18일 NSC에서 이라크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다만 파병 시점과 부대 규모, 성격에 대해서는 논의를 더 이어가기로 했다. 미국이 수천 명 규모의 사단급 전투병력을 추가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한국은 이미 이라크전 개전 한 달여 만인 같은 해 4월 약 600명 규모의 의료·재건 지원부대를 파병한 상태였다.
미국이 추가 파병 요구 소식이 알려지자 진보 성향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파병 반대 시위가 일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날 NSC를 주재하며 남긴 친필메모에는 미국의 요구와 국민 반대 여론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담겨 있다. "위험에 관한 인식 표현"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해당 메모에는 "형태, 규모(추정), 시기에 관하여" 항목 아래 "한국군의 특성과 한국 국민의 의사 고려" "한국 주도로 결정" 등이 적혀 있다. 또 "미국의 요청을 고려하되" "이라크에 가장 도움이 되는 방안" 등이 기록돼 있다.
동맹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추가 파병은 하되, 파병 부대의 임무와 규모·성격 등은 국민 여론 등을 살펴 한국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요구한 사단급 규모의 전투병 파병안을 국익 관점에서 조정할 여지를 담은 메모로 볼 수 있다.
파병 부대의 고유 임무와 규모 최소화
약 3주 뒤인 2003년 11월 11일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남긴 메모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기록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이라고 쓴 뒤 "미국과 분리·차별화" "현지 군경과의 협력" "한국군 고유 역량"을 번호를 매겨 적었다. "독립"이라고 적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이라크의 치안·질서를 유지하는 안정화 작전 수행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를 고려하면 해당 메모는 미군과 분리돼 고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을 파병지로 정해 이라크 전쟁에 연루될 위험을 줄이려 한 흔적으로 보인다. 군사적 성격이 있는 치안 유지 작전은 현지 경찰·군대와 협력하는 방식으로 부담을 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안 - 2300명 여단" 등의 문구에서는 파병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 생산 일자 미상 친필메모에는 "재건지원" "기능군" "자기방어" "치안 안정" 등과 함께 "미측과의 원만한 합의"가 적혀 있다. 미국의 군사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도 한·미 관계를 고려한 파병 방안을 모색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이툰 부대와 23년 뒤의 상황 비교
2004년 2월 국회 동의를 거쳐 추가 파병된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자치구 아르빌에서 재건·의료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치안·질서 유지는 현지 경찰·군대가 담당하고, 자이툰 부대는 이들의 교육·훈련을 지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한국의 추가 파병에 사의를 표했다.
23년 흘러도 "파병 얘기는 어렵다"는 고백을 남긴 이 대통령은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고민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쟁에 관여,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상선과 원유수송로,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은 해야 한다"며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파병된 청해부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언급했다.
한·미 관계 관리를 위해 파병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반대 여론 등을 고려해 신규 부대 파병을 피하고 상선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특히 "외국군 지휘하에 우리 장병들을 배속시켜서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을 배제했는데, 파병하더라도 미국의 군사 작전에 거리를 두며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두 상황의 유사점과 차이점
동맹국과의 관계, 파병에 따르는 위험, 국내 반대 여론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두 대통령이 놓인 상황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파병 여건은 차이가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라크 추가 파병의 경우 주요 전투가 일단락된 뒤 이뤄졌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이란의 군사적 충돌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또 노무현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북한 공격 가능성이 거론되던 상황에서 한·미 간 대북 정책 공조를 위해 파병을 검토할 필요가 있었으나,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따르는 이익은 불분명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이툰 부대 파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의 안정을 위한 다국적군 활동을 승인한 뒤 이뤄진 것과 달리, 미·이란 전쟁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는 낮다는 점도 이 대통령의 고심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