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의 생존 위협하는 '암 악액질'의 새로운 돌파구

현대 의학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은 여전히 정복되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다. 특히 암 환자들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는 것은 암 자체보다, 음식을 섭취하더라도 근육과 지방이 급격히 빠져나가는 '암 악액질' 증상이다. 최근 국내 연구진이 이러한 암 악액질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제 후보 물질을 선보여 학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와 의과학대학원, 그리고 교원창업기업인 토르 테라퓨틱스의 공동 연구팀은 암 악액질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항체 후보 물질인 'GB2Ab'를 개발했다고 29일 발표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국제적인 학술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즈'의 10월 28일 자 호에 게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GFRAL 수용체 차단으로 에너지 소모와 식욕 저하 억제

암 악액질은 단순히 식욕이 떨어져 살이 빠지는 일반적인 상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암 세포의 영향으로 인체 내 영양분 활용 방식과 에너지 대사 체계가 변질되면서 근육과 지방이 동시에 소실되는 합병증이다. 이는 단순한 영양 공급만으로는 회복이 어렵고, 환자의 일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의 지속성을 저해해 완치를 가로막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이 질환의 핵심 기전에는 'GDF15'라는 단백질이 관여한다. 암세포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혈액 내 GDF15 농도가 높아지면, 이것이 뇌간에 위치한 'GFRAL' 수용체와 결합한다. 이때 식욕을 떨어뜨리고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도록 만드는 신호가 전달되는 것이다. 즉, GDF15가 신호를 보내는 전달자라면 GFRAL은 그 신호를 수신하는 수신기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이 수신기를 항체로 무력화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혈액 속의 GDF15를 직접 포획하는 대신, 신호를 받아들이는 통로인 GFRAL 수용체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개발된 항체 GB2Ab는 해당 수용체에 강력하게 결합하여, 식욕 저하와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유발하는 신호 전달 경로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또한 연구팀은 항체와 수용체의 결합 구조를 정밀 분석해 작동 원리를 규명했으며, 이를 토대로 항체의 안정성과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생쥐 실험서 체중 20%·악력 30% 개선 효과 입증

연구팀은 대장암 세포를 이식해 암 악액질을 유도한 생쥐 모델로 효능 검증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항체 GB2Ab를 투여한 생쥐는 음식 섭취량이 눈에 띄게 회복되었으며, 종양 무게를 제외한 체중이 미투여군 대비 약 20% 높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근육과 지방의 손실도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신체 기능 측면에서도 뚜렷한 개선이 확인되었다. 물체를 쥐는 힘인 악력을 측정한 결과, 항체 투여군은 미투여군보다 약 30%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 정상 생쥐의 90%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체중 유지뿐 아니라 실질적인 근력 회복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교감신경의 과도한 활동이 감소한 점을 통해, 항체가 섭취량을 늘리는 동시에 신체의 과도한 에너지 소모를 조절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번 후보 물질은 종양의 크기를 직접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암으로 인한 신체 쇠약 상태를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기존 항암제와 병용할 경우 환자가 체중과 근력을 보존하며 치료를 완수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다만 실제 인체 적용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검증과 임상시험 단계가 남아 있다.

김호민 생명과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가 암 악액질 신호 차단 항체의 작동 원리와 생쥐 모델에서의 효과를 입증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토르 테라퓨틱스 대표인 송민호 의과학대학원 교수 또한 면역항암제와의 병용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며, 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치료제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