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식 지배구조의 확산과 위험성
과거 대기업의 총수는 흔히 '오너'로 불리며 회사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수행했다. 지분을 대다수 보유한 창업자는 사업 초기부터 직접 경영에 참여하며, 이익을 독점하는 만큼 경영 실패에 따른 손실도 온전히 책임졌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경영자의 신중함과 책임감이 담보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업 규모가 커지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시점이 오면 상황은 변한다. 공장 증설이나 신사업 진출을 위해 주식을 새로 발행해 외부 자금을 수혈하면, 창업자의 지분율은 자연스럽게 하락한다. 사업은 확장되지만 경영권은 주주들과 분산될 수밖에 없다. 소유권이 분산되면 이사회가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고 감독하는 시스템이 작동하며, 경영진은 실적 부진이나 신뢰 상실 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이사회에 의해 경영권을 상실했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이용한 지배력 유지 기법
사업 확장 과정에서 창업자 일가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불가피한 흐름이다. 하지만 외부 투자를 유치하면서도 지배력을 보존하는 전략이 존재한다. 특정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해 상장시키는 방식이다. 모회사가 직접 투자를 받는 대신 자회사가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모으게 하면, 모회사의 지분 구조는 유지된 채 사업 자금만 확보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직접 자금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말을 듣는 자녀에게 사업을 맡겨 돈을 가져오게 하는 것과 유사하다.
지배력 유지를 위한 구조는 더 정교해질 수 있다. 자회사의 지분율이 낮아지면 다시 그 아래에 손자회사를 세워 상장하는 식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손자를 통제하는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최상위 지배주주는 전체 의사결정권을 장악하면서도 외부 자금을 끊임없이 끌어온다.
이러한 경영 방식은 단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장기적 안목의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소유와 지배의 간극이 지나치게 벌어질 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지배주주는 손자회사의 경영권을 행사하면서도 정작 그 회사의 손익에 따른 실질적 몫은 매우 적을 수 있다. 이로 인해 주주들의 자본을 활용해 수익성보다는 사업 규모 확장이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사업에 몰두할 위험이 크다. 자신의 자본이 아닌 회사의 돈을 사용하는 만큼,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도 어렵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법적 규제의 필요성
투자자들은 기업의 이익이 주주에게 환원되지 않고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소진될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업의 가치가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게 만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 된다.
현행법은 이러한 무분별한 피라미드 확장을 막기 위해 선을 긋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SK㈜의 손자회사로서, 국내 법규상 자회사를 둘 때 원칙적으로 해당 지분을 전량 보유해야 한다. 이는 손자회사 단계에서 외부 자금을 유치해 지배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다만, 미국의 법인인 '고손회사' 솔리다임은 이러한 제한에서 자유롭다. 최근 SK하이닉스가 자본시장 여건을 고려해 솔리다임의 미국 증시 상장 및 투자 유치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상장 후 지배력 유지로 인한 소유와 지배의 괴리 우려를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결국 기업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성과가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주주의 자금으로 성장한 만큼, 주요 결정 과정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과 주주의 권리 존중이 필수적이다. 이사의 주주 보호 의무를 명시한 상법 개정은 이러한 원칙을 세우는 중요한 진전이며, 이제는 그 원칙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SK하이닉스의 공시 내용
지난 23일 SK하이닉스는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의 상장 관련 공시를 통해, 생산능력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프리IPO 및 IPO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