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짓던 손으로 차려낸 밥상, 그 이면의 고통

과거 글을 쓰던 작가였던 나는 어느 날 식당 운영자로 삶의 궤적을 바꿨다. 도심 속 지친 직장인들을 위해 정성껏 밥상을 차려냈고, 그 과정에서 느낀 보람과 진심은 무엇보다 확고했다. 하지만 화려한 밥상 뒤편에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고단한 나날들이 숨겨져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우연히 함께 일하던 동료의 개인 방송을 보게 되었다.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 너머로, 나는 내 식당의 이름이 적힌 프로필을 발견했다. 그 순간 방송 소리는 멀어지고 지난 세월이 자막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식당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 주인이 나라는 사실만이 화면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4라운드 내내 맞고만 있던 복서처럼

식당 운영과 더불어 나는 4년째 노무 문제로 노동청을 드나들어야 했다. 생업을 이어가는 일이 신성한 것이라 믿으며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이름으로 적힌 서류 한 줄을 마주한 순간, 참아왔던 인내심이 끊어졌다. 나는 법적 절차를 통해 지난 고통을 정리하고자 했고, 사업자 대상의 법률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달라는 청원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법은 내 편이 아니었고, 청원에 대해서도 노동청으로부터 원론적인 답변만이 돌아왔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말은 내 마음을 위로하지 못했다. 마치 링 위에서 4라운드 내내 주먹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복서처럼, 나는 무력감에 짓눌렸다. 결국 몸과 마음이 모두 무너져 내린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코딩 모르는 작가의 도전, K대 창업 프로그램을 향해

일주일간의 방황 끝에 나는 다시 일어섰다. '노무로 고통받는 이가 없도록 사장과 근로자가 공생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목표가 내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자금도, 구체적인 방법론도 없었지만 해결하고 싶은 문제와 뜨거운 분노가 나를 움직였다. AI의 도움을 받아 창업 지원사업에 도전했으나, 기술적 기반이 없는 작가의 도전은 번번이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셨다.

절망의 끝에서 나는 K대의 예비창업자 육성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해커톤과 발표를 거쳐 생존자를 가려내는 일종의 창업 서바이벌이었다. 그 공고를 보는 순간, 십여 년 전 K대 입주작가로서 학생들과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책을 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이곳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다시 한번 신의 뜻을 믿기로 하며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진짜 문제는 탈락이 아니라, 합격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