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협업으로 뚫린 글로벌 판로
AI 솔루션 '백엔드닷에이아이(Backend.AI)'를 만드는 기업 '래블업'은 과거 인터페이스의 복잡함과 초보 사용자의 접근성 문제로 고객들로부터 어려움을 호소받았다. 기능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적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래블업은 2024년 디자인 전문 기업인 '바이스 버사 디자인 스튜디오'와 손잡고 서울시 및 서울디자인재단이 주관하는 '중소기업 산업디자인 개발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디자인 기업의 조력을 통해 사용자 중심의 화면 구성과 사용성 개선을 이뤄낸 결과, 프로그램 도입 기업 수가 이전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러한 성과는 래블업의 다른 솔루션인 '패스트트랙(FastTrack)'과 '에이아이고(AI:GO)'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 영국, 싱가포르, 태국 등 해외 시장에서 5곳의 현지 판매 대행사를 확보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2023년부터 추진해 온 이 지원 사업을 통해 지난 3년간 총 132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했으며, 이들이 도출한 디자인 제품은 138건에 달한다. 개발된 디자인은 단순한 시안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제품 출시를 통한 판매, 지식재산권 확보, 투자 유치 등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로 이어지고 있다. 디자인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전문 디자인 업체와 매칭해 제품 경쟁력을 높인다는 사업 취지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러한 3년간의 사업 사례와 현장 경험을 담은 백서를 이번 달 발간했다.
27억 원 투입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중소기업과 디자인 기업은 한 팀이 되어 제품의 외형 설계부터 패키지 교체, 앱 및 소프트웨어의 UI/UX 개선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한다.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2023년부터 3년 동안 총 27억 9,060만 원의 예산을 디자인 개발비로 투입해 왔다. 재단 관계자는 K-콘텐츠와 K-팝이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디자인 문제로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을 돕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밝혔다. 기업이 가진 본연의 강점이 디자인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도록 지원함으로써 정당한 시장 평가와 사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실제로 디자인을 통해 시장을 확장한 사례는 다수 존재한다. 웰니스 뷰티 브랜드 '리솔츠(ReSaltZ)'를 운영하는 '히즈'는 2024년 디자인 기업 '프론트캣'과 협력해 제품 패키지를 전면 개편했다. 기존 포장이 제품별 특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랜드 고유의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원료와 특징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디자인을 수정했다. 그 결과 일본 고급 매장들의 입점 요청이 급증했으며, 히즈는 도쿄 아자부다이힐즈와 다이칸야마 콘란샵 등에서 브랜드 팝업 매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조명 전문 기업 '배룩스' 역시 디자인을 통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유럽의 프리미엄 조명 시장에 기술을 공급할 만큼의 실력을 갖췄음에도 B2B 중심의 거래 구조에 한계를 느꼈던 배룩스는, B2C 시장 진출을 위해 2025년 디자인 기업 '비케이아이디(BKID)'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원 사업에 나섰다. 소비자 접근성을 높이면서도 기술력을 증명할 수 있는 자체 브랜드 '배뉴(BAENUE)'를 론칭하고 휴대용 무선 램프 '미니(MINI)'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지난 6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쓰리데이즈오브디자인(3daysofdesign)' 축제에 출품되었으며, 현재 국내 루밍과 까사미아 매장에도 입점해 있다.
실질적 성과로 증명된 디자인의 가치
서울디자인재단은 단순히 디자인 결과물의 개수만을 성과 지표로 삼지 않는다. 협업을 통해 구축된 디자인 방식이 차기 제품 개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중시하며, 실제 제품의 출시 여부나 서비스 개선, 투자 유치 및 거래 성사 여부를 면밀히 살핀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지원 사업을 통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 또는 개선했거나 예정 중이라고 답한 기업의 비율은 2023년 76%에서 2024년 79%, 지난해 86%로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응답 기업의 29%가 이미 개선이나 출시를 완료한 상태였다.
지난 3년간 참여 기업들이 확보한 특허 및 디자인권 등 지식재산권 출원 건수는 총 74건에 달해 독자적인 디자인 권리를 인정받았다. 또한, 지원 사업을 거친 기업들이 투자 유치 등을 통해 확보한 자금 규모는 올해까지 총 568억 원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재단 측은 이러한 수치가 아직 매출이 본격화되지 않은 단계의 기업이라 할지라도, 외부 시장으로부터 기술력과 사업성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