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기술 수준을 정의하는 국제적 기준이 새롭게 바뀐다. 자율주행 차량이 차선을 유지하거나 속도를 제어한다고 해서 운전자가 전방 주시를 멈추거나 핸들에서 손을 떼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며 자동차와 인간의 역할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 속에서, 국내 연구진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율주행 6단계 국제표준의 개정 작업을 이끌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29일, 자율주행 기술의 수준을 0단계부터 5단계까지 분류하는 국제표준인 'ISO 22745'의 개정 과정을 국내 연구진이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표준은 지난 2014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공급사, 각국 정부 및 국제기구가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관련 제도 수립의 근거로 활용해 온 핵심 지침이다.

미국 중심의 표준 개정 흐름을 바꾼 국내 연구진

이번 개정 작업은 차홍기 지능정보표준연구실장이 3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괄하여 완성했다. 그동안 미국 중심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던 국제표준 개정 과정을 한국 연구진이 처음으로 주도했다는 점에서 학술적·산업적 의의가 크다. 새롭게 정비된 개정판은 지난 9월 20일 공식적으로 발간을 마쳤다.

기존의 표준 체계는 자율주행 단계를 운전자 보조, 부분 자동화, 조건부 자동화, 고도 자동화, 완전 자동화 등으로 나누어 설명해 왔다. 그러나 최근 차선 유지 및 속도 조절과 같은 운전자 지원 기능이 정교해지면서, 사용자들이 이를 완전한 자율주행으로 오해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특히 업계에서 통용되는 '레벨 2+'와 같은 비공식적 명칭들이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레벨별 역할 재정립…운전자와 시스템의 경계 획정

이번 개정의 핵심 목표는 자동차가 수행하는 운전 영역과 인간 운전자가 개입해야 하는 시점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데 있다. 레벨 1 단계는 차량이 조향 기능이나 속도 조절 기능 중 하나를 지원하는 수준이다. 레벨 2 단계는 조향과 속도 조절을 모두 지원하지만, 운전자가 항상 시스템을 감독해야 하며 비상시 즉각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레벨 3 단계부터는 특정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자동차가 스스로 주행을 수행한다. 다만 시스템의 경고가 있거나 차량에 명백한 고장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반면 레벨 4 단계는 정해진 조건 하에서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자율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레벨 3와 차별화된다. 마지막 최고 단계인 레벨 5는 모든 주행 환경에서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완전 자율주행 상태를 뜻한다.

산업계와 소비자 보호를 위한 새로운 기준 마련

새로운 표준이 적용됨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 및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운전자와 차량의 역할을 더욱 정밀하게 구분하여 기능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됐다. 또한 각국 정부의 규제 기관과 보험 업계 역시 자율주행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가리거나 안전 기준을 논의할 때 구체적인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소비자 측면에서도 본인이 이용하는 차량이 단순 보조 장치인지, 아니면 특정 조건에서 실제 자율주행을 수행하는 단계인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로보택시 등 자율주행 서비스가 확장됨에 따라 명확한 국제 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국내 연구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이 자율주행 분야의 국제 표준을 선도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