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과 방어 동시에 무너뜨리는 이중 항암 기술
국내 연구진이 빛을 이용해 암세포를 타격하는 동시에, 암세포가 스스로를 복구하는 경로까지 차단하는 차세대 항암 치료제를 선보였다. 이번 기술은 빛이 닿은 국소 부위뿐 아니라 체내 곳곳에 퍼진 암세포까지 억제하는 효능을 보여, 암의 재발과 전이를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대학교 화학과 김종승 교수 연구팀은 암세포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동시에 회복 방어 기제까지 무력화하는 이중 작용 항암 물질을 개발했다고 29일 발표했다. 이 물질은 암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에너지 공급을 끊고, 세포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통로를 막는 역할을 수행한다.
국소적 빛 치료가 전신 면역 반응으로 이어져
이번 연구의 핵심적인 성과는 특정 부위에만 빛을 조사해도 신체 전체에서 항암 반응이 유도된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유방암 모델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는데, 종양이 발생한 양측 중 한쪽 부위에만 빛을 비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받지 않은 반대편의 종양 크기까지 함께 감소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는 국소적인 광치료가 신체 면역 체계를 활성화해 전신적인 치료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광역학 치료는 빛을 통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 암세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방식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암세포가 내부 효소를 가동해 에너지를 빠르게 재충전하면서 치료 효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한계가 존재했다. 연구진은 암세포가 에너지를 복구할 때 특정 효소를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공격수' 역할의 물질과 에너지 재충전을 방해하는 '수비수' 역할의 효소 억제제를 결합한 신물질을 설계했다.
암세포 회복 통로 차단해 면역 시스템 활성화
개발된 물질을 투여한 후 빛을 조사하면, 암세포의 에너지가 고갈됨과 동시에 회복을 위한 통로가 봉쇄된다. 에너지를 잃고 파괴된 암세포는 체내 면역 반응을 유도하며, 이를 통해 활성화된 면역 시스템이 몸속 다른 부위에 잔존하는 암세포까지 찾아내 공격하게 된다.
김종승 고려대 교수는 이번 성과가 암세포를 직접 타격하는 기술과 세포의 회복 능력을 제어하는 기술을 하나로 통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 기술이 향후 치료가 까다로운 암이나 재발이 빈번한 암을 정밀하게 다스리는 새로운 항암 플랫폼으로 쓰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국제 학술지인 '앙게반테 케미(Angewandte Chemie)'에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