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의 무리한 자금 조달과 지속 가능성 논란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막대한 자금 조달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립 비용과 전력 확보, 반도체 구매 등에 들어가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으면서, 거대 기술 기업들조차 자체 자금만으로는 부족해 증자나 차입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의 27일(현지 시각) 보도에 따르면, AI 산업계는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 대출과 신주 발행은 물론 고도의 금융 기법까지 동원하는 실정이다. 일례로 앤스로픽은 지난 26일 추가적인 투자 필요성을 언급하며 약 1000억달러(약 132조원) 규모의 기업공개(IPO) 추진 계획을 공식화했다. 메타 역시 신주 발행 등을 통해 총 975억달러(약 129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추진 중이며, 스페이스X는 AI 관련 장비와 반도체 구매 비용으로 400억달러(약 53조원)를 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디스의 경고: 1조 달러 규모의 설비 투자와 차환 리스크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미국 내 5대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과 코어위브의 내년도 설비 투자액이 약 1조 달러(약 1320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디스는 자금 수요의 범위가 단순한 데이터센터 건설을 넘어 부지 확보와 전력 공급, GPU(그래픽 처리 장치) 구매로까지 확장됨에 따라, 기업들이 내부 현금 흐름 외에 특수목적법인(SPV)이나 합작법인, 차입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정한 위협은 향후 다가올 상환 압박에 있다. 무디스는 2027년부터 2029년 사이에 대출 만기가 집중적으로 도래함에 따라,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이 기존 부채를 새로운 대출로 갈아타는 '차환'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금리가 상승하거나 자금 조달에 실패할 경우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반도체 제조사와 AI 개발사, 클라우드 업체가 투자와 대출, 구매로 서로 얽혀 있는 '순환 금융' 구조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모든 연결 고리가 동시에 무너질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강화되는 금융 조건과 한국 반도체 수출의 잠재적 타격
실제로 최근 진행되는 대규모 AI 관련 금융 거래에서는 대출 심사 조건이 까다로워지는 추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앤스로픽에 AI 칩을 공급하는 630억 달러 규모의 금융 거래 사례를 언급하며, 은행들이 손실 가능성을 우려하자 브로드컴의 혹(Hock) CEO가 직접 개입해 금리 인상과 보증 강화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이는 칩 공급사가 고객의 자금 조달을 돕는 수준을 넘어 금융 리스크까지 일부 분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AI 투자 흐름의 변화는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은행의 국정감사 답변 내용에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가 위축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전개될 경우 내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은 기존 예상치보다 500억~1000억 달러가량 급감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출 증가세 둔화와 더불어 반도체 단가가 예상보다 10% 낮아지는 상황을 가정한 결과로, 이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 또한 기존 전망보다 0.4%포인트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