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못한 평범한 여성들의 위대한 생애

경향신문의 여성 서사 아카이브인 '플랫'이 여섯 번째 입주자 프로젝트인 ‘그러코 이 집안을 이겨나갔어’를 선보인다. 이번 프로젝트는 2022년 진행된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2년생 손녀 이수영 씨는 1945년생인 친할머니 김정임 씨의 삶을 추적하여 구술생애사로 기록했다. 김정임 씨는 1960~70년대의 견고한 농촌 가부장제 속에서도 순응과 저항을 반복하며 삶을 개척해 온 인물이다. 그녀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상경했고, 스스로 가게를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집안의 역경을 극복했다.

이수영 씨는 당초 이 기록을 가족 내부의 공유물로만 남기려 했으나, 평범해 보이는 시대 여성들의 삶을 사회적 차원에서 공유해야 한다는 확신을 얻어 공개를 결정했다. 그녀는 이 기록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욕망과 삶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참고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세상에 기록되지 못할 만큼 사소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할머니의 발자취를 통해 배웠다고 전했다.

울산에서의 실패와 광주 상경, 그리고 세탁소 운영

김정임 씨의 도시 생활은 1982년 울산에서의 시도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남편은 면사무소 직원이었으나 위 수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시골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가족은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근처로 거처를 옮기려 했다. 막내 시누의 권유로 국밥집 운영을 시도했으나, 낯선 억양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두 달 만에 울산 생활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는 대신 광주에 있는 친정 오빠 집으로 향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시골로 돌아가자는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임 씨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자신이 있다며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광주 백운동의 한 세탁소 자리를 맡게 되었다. 바느질 기술을 활용해 이틀 만에 업무를 익힌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하며 생계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월 수입은 35만 원에서 40만 원 수준이었으나, 그녀는 자식들을 키우고 돈을 모으기 위해 극도의 절약을 실천했다. 밤에는 세탁소 업무를 마치고 밤 껍질을 깎는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으며, 주말에는 시골로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등 3년간 쉼 없이 움직였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헌신과 간병의 기록

경제적 기반을 닦아가는 과정에서도 그녀의 삶은 헌신으로 가득했다. 세탁소 운영과 더불어 수박 장사를 돕기도 했으며, 도시로 나온 고향 사람들을 위한 사랑방 역할도 자처했다. 1985년에는 암 진단을 받은 시아버지를 광주로 모셔와 간병했다. 당시의 사회적 관습에 따라 큰며느리로서 시부모를 봉양하며, 직접 바느질한 수의를 준비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후 화정동으로 이사하여 7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며 형편을 개선했다. 시어머니가 갑작스러운 혈압 저하로 쓰러진 뒤에는 세탁소 일과 병원 간병을 병행하는 고단한 일상을 보냈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뒤에는 세탁소 한편에서 배설물을 받아내는 등 극한의 간병을 이어갔다. 이러한 고단한 순간에도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여기며 묵묵히 견뎌냈다. 김정임 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효도를 다했다는 자부심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