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고통을 삼키는 ‘침묵 속의 고통’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불편을 줄까 봐, 내 몫은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파도 참았습니다.” 유방암 투병을 마친 52세 직장인 여성 ㄱ씨의 고백이다. ㄱ씨는 자신의 병이 세 자녀의 일상을 흔들지 않도록 신체적 통증 속에서도 업무를 놓지 않았다. 입원 중에도 가족의 식사와 장보기를 직접 챙기거나, 남편에게 집안일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감당하는 쪽을 택한 환자들도 있었다.

지난 6월 국제학술지 ‘패밀리 릴레이션스(Family Relations)’에 게재된 연구는 32~54세 유방암 생존자 14명을 심층 면접하여 이러한 실태를 조명했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치료를 마친 이들 중에는 호르몬 치료를 병행 중인 환자들도 포함되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가 가족의 주된 돌봄자라는 문화적 인식이 암 치료 과정에도 투영된다고 분석했다. 환자가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임에도 가족의 부담을 우려해 고통을 숨기는 현상을 연구진은 ‘침묵 속의 고통’이라 명명했다.

치료 종료 후에는 환자와 주변인 사이의 인식 격차가 더욱 심화된다. 외견상 건강해 보이고 병원 방문이 뜸해지면 가족과 직장은 환자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환자의 내면에는 신체적 증상과 심리적 압박, 그리고 재발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상존한다. 연구진은 이를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정상은 아닌 삶’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5년 뒤에도 찾아오는 재발 위협과 내분비요법

유방암 생존율이 높아짐에 따라 ‘치료 이후의 삶’은 더욱 중대한 과제로 부상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여성 유방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94.8%에 달하며, 유방 국한 시에는 99.2%까지 높아진다. 국내 유방암 생존자 수는 이미 35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유방암은 생존 여부를 넘어, 치료 이후 수십 년의 삶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핵심인 질환이 되었다.

특히 전체 환자의 70~80%를 차지하는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은 치료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재발할 위험이 있다. 이에 따라 수술과 항암치료가 끝나도 통상 5년에서 10년 동안 보조 내분비요법을 지속해야 한다. 민준원 단국대병원 유방암센터 교수는 호르몬수용체 양성 암의 특성상 ‘지연 재발’ 가능성이 존재하며, 내분비요법이 재발 및 사망 위험을 낮추는 필수적인 표준치료라고 설명했다. 메타분석에 따르면 타목시펜 5년 복용 시 재발 위험은 약 40%, 사망 위험은 약 30% 감소하는 효과가 입증되었다.

부작용으로 인한 치료 중단 위기와 관리의 필요성

하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내분비요법의 부작용이 환자들을 괴롭힌다. 최승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한유총회) 회장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큰 치료가 끝났다고 믿었던 시점에 다시 5년의 약물 복용이 시작되었을 때 느낀 당혹감을 전했다. 약물 복용 후 불면증, 식욕 저하, 변비, 안면홍조, 야간 발한 등의 증상이 나타났으며, 이는 환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고통이다. 관절통이나 근육통, 심한 경우 보행조차 힘든 일상의 붕괴를 경험하기도 한다.

한유총회가 유방암 환자 3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안면홍조나 야간발한 같은 혈관운동증상(VMS)을 겪었다. 이 증상들은 평균 2.31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57.5%의 환자가 2년 이상 증상을 호소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부작용으로 인해 내분비요법을 일시적 또는 완전히 중단한 환자가 전체의 12%(46명)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부작용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재발 방지라는 치료 목적 자체를 위협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민준원 교수는 부작용이 심할 경우 임의로 중단하기보다 의료진과 상담하여 약제를 변경하거나 치료 전략을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에는 증상을 완화하는 비호르몬 치료 접근법을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최승란 회장은 환자들이 통증과 수면 장애를 구체적으로 알리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의료진 또한 치료 초기부터 부작용 관리법을 상세히 안내할 것을 촉구했다. 환자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지원 체계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