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로 떠넘겨지는 '국정농단'의 청구서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국제투자분쟁(ISDS) 결과에 대해 패소 판정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불복을 위한 취소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승소 가능성이 낮고, 지연이자 등 추가적인 비용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30억 원이라는 막대한 배상액을 단순히 국고에서 지급하며 상황을 종료해서는 안 된다.
법무부는 지난달 발표된 환송 중재판정에 대해 영국 법원을 상대로 취소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28일 밝혔다. 이는 정부 측 대리인인 로펌과 전문가들의 자문을 종합하여 내린 결론이다. 엘리엇이 중재를 신청한 지 약 8년이 흐른 시점에서, 정부는 원금과 지연이자를 포함한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박근혜 정부의 개입이 불러온 막대한 비용
이번 배상금은 정부가 정상적인 정책 집행 과정에서 발생시킨 비용이 아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고, 그 결과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발생한 사안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유리한 형태의 합병을 이끌어내기 위해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은 2022년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바 있다. 또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 역시 2021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중재판정부 또한 한국 정부의 합병 개입과 엘리엇 측의 손해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확인했다. 결국 1,530억 원은 권력과 재벌이 결탁했던 '국정농단'의 결과물이 남긴 청구서인 셈이다.
책임자에게 구상권 청구해야
법무부는 이 막대한 비용을 누가 책임질 것인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배상금 지급 방식에 대해서만 논의 중이라고 밝힐 뿐, 관련 책임자들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국회와 시민사회는 2023년 첫 중재판정이 나왔을 때부터 이미 유죄가 확정된 문형표 전 장관,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그리고 합병의 수혜자인 이재용 회장 등에게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물론 국제투자분쟁 과정에서 구상권이나 손해배상이 법적으로 인정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불법 행위자들이 남긴 막대한 비용을 아무런 조치 없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전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법무부는 이번 배상 사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끝까지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