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조치 무색하게 만든 수사·사법기관의 소극적 태도
피해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지급된 스마트워치가 무용지물이 된 채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가 제공된 이후 발생한 19건의 살인·살인미수 사건을 분석한 결과, 그중 8건은 검찰과 경찰, 법원의 소극적인 대응이 비극의 원인이 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근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기관별로 사전 대응이 미흡했던 사례는 검찰 3건, 경찰 3건, 법원 2건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인 사유로는 경찰의 구속영장 미신청 및 사건 불송치 결정, 검찰의 보호조치 신청 기각, 그리고 법원의 구속영장 청구 기각 등이 지목됐다.
반복된 신고에도 묵인된 위험, 드러난 대응의 허점
사례별로 살펴보면 경찰의 대응 부재가 두드러졌다. 2025년 발생한 화성 살인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최초 접수 이후 무려 9차례나 추가 신고를 했음에도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2026년 제주 살인 사건 전에는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를 근거로 사건을 불송치했으며, 별도의 보호 조치도 신청하지 않았다. 또한 2026년 남양주 살인 사건 전에는 접근 및 연락 금지 명령은 신청했으나, 전자장치 부착이나 유치 조치 등 강도 높은 조치는 누락했다.
검찰의 판단 미스도 확인됐다. 2024년 일산 살인 사건 당시 경찰이 요청한 접근·연락 금지 위반 가해자의 유치 신청을 검찰이 기각했으며, 2025년 의정부 살인 사건과 울산 살인미수 사건에서도 경찰의 보호조치 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정부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력으로 인해 응급조치까지 받은 긴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법원 역시 2025년 대구 살인 사건과 2026년 광주 살인 사건에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피해자 안전 등을 이유로 기각하며 방어막 형성에 실패했다.
늘어나는 보호조치 결정과 함께 증가하는 위반 사례
한편, 수사 및 사법기관이 가정폭력과 스토킹 사건에 대해 보호조치를 결정하는 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법원행정처 자료에 따르면 법원의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조치 결정은 2022년 1만 863건에서 2025년 1만 9267건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이를 위반한 사례도 2022년 700건(6.4%)에서 2025년 1406건(7.3%)으로 함께 늘어났다. 스토킹 피해자 보호 조치 결정 역시 2022년 7441건에서 2025년 1만 4798건으로 증가했으며, 위반 건수 또한 2022년 533건(7.2%)에서 2025년 1103건(7.5%)으로 늘어났다.
김남근 의원은 미국 등 해외 사례를 언급하며, 영구 접근금지 명령이나 위반자에 대한 위치추적 등 더욱 엄격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법원이 명령을 내린 순간 불안에 떨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여야 한다"며 국가의 적극적인 통제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또한 반복되는 폭력과 보복 위험 속에서 사법기관이 강제 조치에 소극적으로 임해 비극을 초래한 점을 엄중히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여성가족부가 법무부 및 경찰청과 협력해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