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행사 대신 선택한 '현장 경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4주년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별도의 기념행사를 치르지 않은 채 경영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초호황에 힘입어 전례 없는 천문학적 실적을 달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내외적인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됨에 따라 초격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력 투구 행보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이 회장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타계한 지 2년 만인 2022년 10월 27일 회장직에 올랐다. 이로 인해 매년 10월 말은 선대회장의 기일과 이 회장의 취임 시기가 맞물리는 삼성의 특수한 시기가 된다. 그러나 삼성 일가와 경영진은 이 시기를 매우 조용하게 보내왔다. 지난 23일 경기 수원 이목동 선영에서 열린 선대회장의 6주기 추모식 또한 가족과 주요 경영진 위주로 차분하게 진행되었으며, 오는 28일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에서 열리는 추모음악회 역시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는 등 극도의 절제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과 컨트롤타워 재편

이 회장은 취임 이후 단 한 번도 별도의 취임 이벤트를 진행한 적이 없다. 오히려 취임식조차 생략한 채 해외 사업장을 직접 점검하는 현장 경영에 몰두해 왔다. 2023년 추석 연휴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이집트 등 중동 3개국을 순방했으며, 2024년에는 폴란드 소재 삼성전자 가전 공장을 방문했다. 지난해 10월에는 경주 APEC 회의 현장을 방문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글로벌 빅테크 리더들과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강화하기도 했다. 올해 역시 지난 21일(현지시간) 긴장이 고조된 중동 지역을 방문해 아랍에미리트(UAE) 알 다프라 가스화력발전소 현장 인력을 격려하며 행보를 이어갔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의 지난 4년을 삼성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회복시킨 과정으로 평가한다. 2023년 반도체 부문에서 14조 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위기 상황에서, 이 회장은 2024년 5월 비정기 인사를 통해 메모리 반도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영현 부회장을 전격 투입했다. 또한 사업지원TF를 사업지원실로 확대 개편하고 박학규 사장을 발탁하는 등 경영 전략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재편에도 힘을 쏟았다.

실적 신기록 뒤에 숨은 불확실성과 과제

이 회장의 경영 철학인 '업의 본질' 강조는 AI 전환 흐름과 맞물려 놀라운 성과를 냈다. 전 세계 기술기업 사상 최초로 분기 영업이익 100조 원 시대를 여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과제도 산적해 있다. 유례없는 실적 달성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은 AI 산업의 수익성과 투자 확대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또한 메모리 수급 문제와 고물가 여파로 완제품 부문이 적자 늪에 빠져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삼성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반도체 생산능력을 신속히 확장하고 기술 초격차를 강화하며, 비반도체 영역까지 아우르는 사업 구조 고도화를 지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가오는 연말 정기 사장단 인사에서도 결단이 요구되지만, 현재 인사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파격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벤트성 기획이나 대외 메시지 발송보다는 실적과 실력으로 증명하겠다는 기존의 경영 기조를 고수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