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역전과 공급과잉이 불러온 수익성 위기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주요 기업들이 올해 3분기 실적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의 전쟁 여파로 인해 원재료를 고가에 매입한 반면, 완제품의 판매가는 하락하는 상황이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국발 공급 과잉 문제까지 맞물리면서 수익성 악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진단이 지배적이다. 업황 부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고부가 가치 제품 위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여 생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의 자료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영업손실 전망치는 시장 컨센서스 기준 183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1분기 10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2분기까지 이익을 이어왔으나, 3분기 들어 다시 적자 늪에 빠질 위기다. 만약 이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상반기 동안 쌓아 올린 1836억 원의 누적 영업이익이 단 한 분기 만에 모두 사라지게 된다. 다른 주요 기업들의 상황도 낙관적이지 않다.
LG화학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약 절반 수준인 3076억 원 규모로 급감할 것으로 보이며, 한화솔루션 역시 전 분기보다 34% 감소한 2034억 원의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다만 이는 배터리와 태양광 사업이 포함된 연결 기준이며, 순수 석유화학 부문만 분리해 보면 타격은 훨씬 크다. 증권가에서는 LG화학의 기초소재 부문이 2분기 427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3분기에는 1500억~1600억 원대의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케미칼 부문 영업이익 또한 871억 원에서 160억 원 수준으로 약 80%가량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래깅 현상에 따른 실적 악화와 고부가 사업으로의 탈출구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운영하지 않는 금호석유화학은 흑자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영업이익은 3390억 원을 기록했던 2분기보다 70% 이상 줄어든 864억 원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실적 하락의 핵심 원인으로는 '역래깅(Reverse Lagging)' 현상이 지목된다. 이는 원료 구매 시점의 가격과 제품 판매 시점의 가격 차이가 손실을 유발하는 구조를 의미한다. 상반기에는 전쟁 이전의 저렴한 원료를 사용해 수익을 냈으나, 하반기부터는 고가의 원료가 투입되며 실적 부담이 가중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재 가격 정보에 따르면, 에틸렌 스프레드는 지난 4월 톤당 314.86달러에서 7월 평균 68.87달러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고부가 가치 사업이 유일한 돌파구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적 차별성이 확보된 제품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덜 민감하며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기능성 소재의 비중을 6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올해 가동을 목표로 하는 율촌 컴파운딩 공장을 통해 스페셜티 사업을 강화하고,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고부가 제품군을 확대해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LG화학은 2035년까지 연구개발(R&D)에 15조 원을 투입해 AI 기반의 고부가 소재 전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반도체, 모빌리티, 로봇 소재 등 핵심 육성 분야에 R&D 자원의 70%를 집중 배치하고, 지난 6월에는 CEO 직속 신사업 개발 조직을 신설해 전략 실행력을 높였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 부문의 부진을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상쇄하려 한다.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 카터스빌 공장을 중심으로 태양광 핵심 공급망을 구축했으며, 차세대 기술인 페로브스카이트 탠덤 셀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업 구조조정과 포트폴리오 전환을 통한 생존 전략
금호석유화학은 전기차 타이어의 필수 소재인 SSBR(합성고무) 시장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구축 완료한 3만 5000톤 규모의 SSBR 생산 설비를 기반으로 제품 개발과 생산 능력 확대를 병행하며 경쟁력을 높일 방침이다. 한편, 일부 기업은 설비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협력해 통합법인인 H&L어드밴스드를 9월에 출범시켰으며, 전남 여수에서는 여천NCC와 함께 노후 설비 감축 및 생산시설 통합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설비 최적화와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 속도가 향후 업계의 실적 회복 시점을 결정지을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