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문턱에 밀려난 자산가들, 사금융으로 눈 돌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서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 시장의 자금 조달 경로가 이례적인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2억 원 수준으로 제한되자, 대부업체나 개인으로부터 수십억 원을 빌려 부동산을 매수하는 '우회 거래'가 빈번해졌으며,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갖춘 자산가들의 시장 점유율도 함께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청약 시장에서는 자금력이 부족한 무주택자와 투자자를 연결해 차익을 노리는 변종 '떴다방'까지 등장하며, 제도권 금융 밖의 자산가들에게 시장 기회가 집중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기업 알스퀘어의 '데이터허브'를 통해 압구정 신현대(9·11·12차)와 잠실주공5단지의 등기부를 분석한 결과, 대출 규제 본격화 이후 완료된 116건의 거래 중 상당수에서 사금융 이용 정황이 포착됐다. 압구정 신현대에서는 규제 이후 거래된 40건 중 4건에서 대부업체, 개인, 법인 등을 통한 거액의 근저당 설정이 확인됐으며, 잠실주공5단지 역시 76건 중 7건이 동일한 유형이었다. 이들 거래의 근저당 설정액은 금융권 한도인 2억 원을 압도했으며, 일부는 채권최고액이 50억 원대에 달했다. 또한 두 단지 모두 지역농협 등 상호금융을 통해 매매 직후 수십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된 사례가 각각 2건씩 발견되어, 전체 조사 대상 중 약 12~15%가 이러한 비정상적 경로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전후 확연히 갈린 자금 조달 양상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인 2023년부터 2025년 6월 사이의 거래 51건을 조사했을 때는 유사 사례가 단 2건에 불과해, 현재의 거래 양상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압구정 신현대와 잠실주공5단지는 평균 매매가가 각각 80억 원대와 40억 원대에 달하는 고가 단지인 만큼, 금융권의 대출 제한이 매수자들을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7월 압구정 신현대 9차의 경우, 매매가의 80%인 57억 원이 대부업체 두 곳을 통해 소유권 이전 등기일에 맞춰 설정됐다. 잠실주공5단지 역시 올해 1월 거래에서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25억 원 규모의 대부업체 근저당이 잡혔으며, 협동조합을 통한 30억 원 설정이나 개인 명의의 16억 원 추가 근저당 사례도 확인됐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고금리를 감수하더라도 외부 자금을 끌어와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대기업 임원이나 전문직 등 고액 연봉자 집단이 대출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으며, 등기부에 기록되지 않는 가족 간 차용 등의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형적 흐름은 청약 시장으로도 전이되고 있다. 서초구 '디에이치 반포124' 분양을 앞두고, 가점은 높지만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자와 투자자를 매칭해 차익을 나누는 '신종 떴다방'이 나타나며 변종 사금융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다.

현금 부자들의 독식과 시장의 양극화 심화

사금융 이용 외에도 현금 중심의 매매가 눈에 띄게 늘었다. 조사 대상 116건 중 66건(56.9%)은 근저당 설정 내역이 없었는데, 이는 전액 현금으로 매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압구정 신현대의 경우 무근저당 거래가 40건 중 28건(70%)에 달했고, 잠실주공5단지도 76건 중 38건(50%)이 대출 없이 거래됐다. 이는 규제 전 잠실주공5단지에서 제도권 금융 이용 비중이 75.8%에 달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매수자 구성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압구정 신현대는 40세 미만 매수자가 40%를 차지했으며, 이들 중 절반은 6억~128억 원대 아파트를 대출 없이 '단독 명의'로 취득했다. 매수자들의 거주지는 강남뿐 아니라 마포, 용산, 경기, 인천 등 전국 단위로 분포했다.

반면 잠실주공5단지는 40세 이상이 75%를 차지하며 중장년층 위주의 시장을 형성했다. 대출 문턱 상승으로 인해 30대 매수 비중은 대책 전 42.4%에서 25%로 급감했다. 매수자 주소지는 송파구 거주자가 55.3%로 과반을 차지하며 지역 내 갈아타기 수요가 주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대출 규제가 과도한 차입을 억제하는 효과는 거두었으나, 자산 격차에 따른 주택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는 부작용을 낳았다. 신보연 세종대 교수는 공급 부족과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맞물린 상황에서 대출과 세금 규제로 시장을 누르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급 물량 확보 후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