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원의 판결과 '제로섬' 논리
지난 202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약 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인종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 입학 과정에서 소수 인종에게 혜택을 주던 이 제도는 사회적 격차 완화를 목적으로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결정문의 다수 의견을 통해 대학 입시가 '제로섬' 게임임을 명시했다. 즉, 소수 인종에게 주어지는 우대는 백인을 포함한 다른 지원자들에게 불이익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은 진정한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평등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반박했으나, 역차별 논리를 내세운 보수 성향 대법관들의 견고한 벽을 뚫지는 못했다. 이러한 소수자 배려를 역차별로 규정하는 논쟁은 한국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 검토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9일, 다문화 우대 정책과 관련하여 일부 정책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과도한 특혜로 변질되거나, 결과적으로 내국인 가정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전날 이 대통령이 자신의 SNS인 엑스(X)를 통해 다문화가정이 공공산후조리원을 이용할 때 누리는 우대 제도의 폐지 필요성을 검토하겠다고 언급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다. 당시 해당 발언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이에 대해 해명 및 반박을 내놓은 것이다.
'역차별' 용어가 지닌 구조적 모순
이 대통령의 발언이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모든 정책을 폐기하자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단순히 다문화가정이라는 신분만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기보다, 각 가정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춰 개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대안을 마련할 수도 있다. 다만 '역차별'이라는 용어의 사용에는 주의가 요구된다. 역차별 논리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소수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둔갑하는 모순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문화가정이 '과도한 혜1를 받는 가해자'로 낙인찍히게 되면, 이들이 사회 구조 속에서 겪는 실질적인 차별은 은폐될 위험이 크다. 릴리 출리아라키 런던정치경제대 교수는 저서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를 통해 역차별 논리가 강자의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청와대의 공지 수정과 과제
청와대는 29일, 이 대통령의 전날 SNS 게시물과 관련해 다문화가정 지원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역차별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검토하겠다는 것이 발언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 청와대는 '우리 국민' 및 '역차별'이라는 단어를 삭제한 형태로 내용을 수정하여 다시 공지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수정 전과 후의 공지문을 대조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