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익힌 해킹 기술, AI 만나 폭주하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악용해 기업의 사내 자료와 개인정보 820만 건 이상을 탈취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해킹 기술을 독학한 이 남성은 특히 AI 자동 침투 도구를 활용하면서 공격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그는 불과 4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60여 곳의 보안망을 무너뜨렸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번 사건 해결을 위해 자체 개발한 수사 전용 AI를 투입하여 범행 조직을 일망타진했다.
26일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해킹 조직의 수장인 32세 남성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와 공갈 및 공갈미수 혐의로 구속해 송치했다고 밝혔다. 현재 공범 6명에 대해서는 불구속 수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 대상에는 롯데케미칼을 포함한 대기업 계열사부터 골프장, 학원, 병원, 상조회사 등 다양한 업종이 포함됐다. 탈취된 데이터에는 미성년자 정보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병원의 진료 및 상담 기록까지 포함되어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아르텍스' 활용해 공격 속도 극대화
예체능 전공자인 이 총책은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해킹 기법을 스스로 익혔으며, 약 7년 전 보안업체에서 모의해킹 업무를 수행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웹사이트의 취약점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을 조작하며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30곳을 해킹해 왔다. 하지만 지난 8월 31일, 중국어 기반의 AI 자율 침투 테스트 시스템인 ‘아르텍스(ARTEX)’를 도입하며 범행 양상이 급변했다.
최근 금융권을 겨냥한 해킹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아르텍스는 사람이 직접 개입하지 않아도 AI가 스스로 보안 허점을 찾아 공격을 수행하는 도구다. 이 도구를 사용한 이후 이달 13일까지 단 40여 일 만에 60개 업체가 뚫렸다. 강남구 소재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당시에도 컴퓨터에는 해당 프로그램이 구동 중이었다. 오규식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2대장은 해당 도구가 목표물만 입력하면 AI가 최적의 수단을 선택해 공격을 완료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3억 6천만 원 요구하며 업체 협박
범행 과정에서 이 총책은 24세 공범과 함께 텔레그램을 통해 협박 건당 1만~3만 원의 수익을 보장한다며 5명의 인원을 모집했다. 이들은 38개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정보 유출을 빌미 삼아 총 3억 6000만 원 규모의 금품을 요구했다. 특히 합의금 감액을 요청하는 업체에 대해 과징금을 언급하며 강하게 겁박하는 태도를 보였다. 다만 실제 금전적 피해를 입은 곳은 30만 원을 지급한 영세 업체 1곳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24억 줄의 기록 분석한 AI 수사
경찰은 6월 첫 진정이 접수된 후 유사 신고가 이어지자 8월부터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서울청은 국가수사본부로부터 지원받은 고성능 AI 컴퓨터를 기반으로 자체적인 내부망 분석 체계와 수사 도구를 구축했다. 이번 수사에서 처음으로 실전 투입된 이 AI 도구는 통화 및 계좌 내역 등 53만 건의 데이터를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또한 피해 업체에 남겨진 24억 7000만 줄의 접속 기록에서 IP 주소와 공격 수법을 정밀하게 추출해 냈다.
경찰은 협박 전화를 수행한 공범을 먼저 검거한 뒤 수사 범위를 상층부로 확대했으며, 로그 분석을 통해 총책의 신원을 파악했다. 그 결과 15일 총책을 체포하는 등 4개월 만에 7명 전원을 검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서울청은 해당 수사 도구의 상용화를 경찰청에 제안할 방침이다. 박한호 원광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AI를 이용한 범죄가 쉬워지는 만큼, 이를 방어하고 추적하기 위한 고도화된 수사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