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부족과 PC 시장 침체라는 이중고

미국의 반도체 거물 인텔이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 사태와 PC 시장의 수요 위축이라는 복합적인 악재를 맞닥뜨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를 향한 투자 흐름 덕분에 회복 기미를 보였으나, 시장의 기대치를 밑도는 실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경영 정상화에 대한 낙관론이 꺾였다. 이로 인해 인텔의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17% 가까운 폭락세를 기록했다.

현지 시각으로 29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인텔의 올해 3·4분기 매출은 165억 달러로 집계되어 시장의 예상치에는 부합했다. 하지만 다가오는 4·4분기 매출 전망이 문제로 떠올랐다. 인텔이 제시한 4·4분기 매출 예상 범위는 150억~160억 달러로, 월가 전문가들이 기대했던 170억 달러를 크게 하회하는 수준이다.

수익성 악화 부른 메모리 단가 상승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더욱 고조시킨 것은 수익성 지표의 악화다. 인텔은 4·4분기 매출총이익률이 37%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심화된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 현상으로 인해 관련 비용이 급증하며 수익 구조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AI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공급난이 가중되고 있다. 메모리 제조사들에게는 이러한 가격 상승이 이익 증대로 이어지는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이를 구매해 PC나 서버용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야 하는 인텔 입장에서는 오히려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판매를 늘리는 데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긴박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부문별 현황과 향후 시장 전망

부문별 실적을 살펴보면, 서버 및 PC용 반도체를 담당하는 제품 사업 부문의 매출은 154억 달러를 기록하며 시장의 예상치를 충족했다. 반면 위탁생산 사업인 파운드리 부문은 67억 달러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비드 진스너 인텔 최고재무책임자(CFO)는 PC 시장의 둔화 국면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번 실적 발표는 인텔이 지난 8월 200억 달러 규모의 신주 발행을 완료한 이후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인텔은 지난 7월 15년 만에 최대 성장세를 보이며 주가가 급등하자, 이를 발판 삼아 대규모 자금 조달을 추진한 바 있다.

정부 지원과 민간 협력의 기대감

인텔의 반등 기조에는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제조 보조금을 지분 투자 형태로 전환해 인텔 지분 10%를 확보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와 일본 소프트뱅크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진행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가 텍사스에서 추진 중인 대규모 반도체 시설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에서 인텔과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구체적인 협력 방식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이는 인텔의 회생 가능성을 높이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AI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수요 증가는 실적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인텔은 올해 3·4분기에만 40억 달러를 설비투자에 사용했으며, 연간 총 투자 규모는 2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막대한 투자가 실제 수익성 개선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팻 겔싱어 전 CEO 시절에도 대규모 생산 시설 투자가 이어졌으나, 대만의 TSMC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외부 고객사를 확보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최근 인텔 주가는 변동성이 커진 상태다. 올해 들어 140% 이상 급등하기도 했으나, 최근 한 달 사이에는 20% 넘게 하락했다. 인플레이션 압박과 AI 데이터센터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 그리고 AI 투자를 위한 기업들의 차입금 증가 등이 투자 심리를 위축시킨 결과로 풀이된다. 한편, 인텔의 3·4분기 순이익은 33억 달러로 집계되었으나, 이는 미국 정부와의 투자 계약에 따른 주식 가치 변동이 포함된 수치이며 조정 순이익은 28억 달러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