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상담원이 가로막은 금융 고객의 소통
최근 카드 결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카드사 대표번호로 연락을 시도했다. 전화 연결 후 마주한 것은 인공지능(AI) 상담원이었다. 본인 인증 단계와 개인정보 입력, 몇 가지 질의응답 과정까지는 큰 무리 없이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정해진 시스템의 메뉴에 부합하지 않는 복잡한 사안을 설명하려 하자 AI는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상담원 연결을 요청하는 말조차 통하지 않아 한참을 씨름한 끝에 다시 연결을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긴 대기 시간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기다림에 지쳐 번호를 남기고 전화를 끊어야 했다.
뒤늦게 걸려 온 카드사의 연락은 하필 저녁 식사 자리였던 터라 받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전화를 걸었음에도 여전히 AI 상담원뿐이었고, 사람과의 연결은 여전히 난항을 겪었다. 며칠 뒤 카드 대금 연체 독촉 전화를 받고서야 드디어 사람과 통화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당혹스러웠다. 연체 안내만을 담당하는 직원이라 해당 문제는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전에 AI와 나누었던 대화 기록조차 공유되지 않아, 결국 다시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처음부터 모든 상황을 다시 설명해야만 했다.
효율성 뒤에 숨겨진 금융 AI의 한계
금융권은 현재 은행과 보험, 카드사 등을 중심으로 AI 상담원과 챗봇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잔액 확인이나 결제일 조회, 카드 분실 신고처럼 정형화된 업무라면 24시간 대응이 가능한 AI가 사람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 반복적인 업무를 줄여주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AI가 수행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인력을 대신해 맡기려 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금융 상담에는 예상치 못한 '예외' 상황이 매우 많다. 복잡한 분쟁이나 민원, 여러 거래가 얽힌 사안, 혹은 고객의 개별적인 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판단은 미리 설정된 시나리오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특히 디지털 취약계층이나 고령층은 설명 방식 자체가 달라야 하며, 금융 사고나 사기 피해로 인해 감정이 격앙된 고객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문제를 끝까지 듣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의 존재다.
사람을 줄이는 기술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인가
AI 시대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휴먼 인 더 루프(Human in the Loop)'는 중요한 순간에 사람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돈과 신용을 다루는 금융 분야에서 이는 필수적이다. 작은 오류가 고객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떻게 사람을 줄일 것인가'가 'AI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보다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다.
많은 금융사 콜센터가 외주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인건비 절감을 위해 AI를 도입하지만, 상담 인력을 줄인 상태에서 성능이 미흡한 AI를 배치하면 고객의 스트레스와 시간 낭비는 커진다. 기업이 아낀 비용을 고객의 불편함으로 전가하는 셈이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단순 업무를 가져갈수록 사람에게는 더 복잡하고 높은 판단력이 요구되는 일이 남게 된다.
결국 금융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AI와 사람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AI가 잘하는 영역은 맡기되, 복잡한 민원이나 취약계층 보호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사람이 즉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고객이 원할 때 복잡한 절차 없이 상담원에게 넘어갈 수 있는 '탈출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한 금융 AI는 인력을 줄이는 도구가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에 사람에게 바통을 넘길 줄 아는 서비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