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과 예술, 그리고 인류의 거대한 흐름

인간의 행동이 유전적 요인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자유의지를 부정했던 신경과학자 로버트 새폴스키의 이전 저작이 소개된다. 2023년 발간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의 전초전 격인 이 책은 2005년에 처음 세상에 나왔다. 저자는 18편의 에세이를 통해 뇌와 유전자, 사회적 문화와 스트레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특히 인간과 동물의 유사점 및 차이점을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 것이 특징이다. 김희정 번역본은 문학동네에서 1만 9000원에 출간되었다.

인공지능이 창작의 영역을 침범하며 발생하는 기묘하고 불편한 감각을 탐구하는 책도 등장한다. 음악비평가이자 언론학자인 데이비드 헤이두는 자동인형과 전자음악을 거쳐 AI에 이르기까지, 기계가 예술의 역사를 어떻게 변모시켜 왔는지 분석한다. AI가 시를 쓰고 노래하는 시대에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무엇인지 살피는 이 책은 까치에서 2만 2000원에 판매된다. 노승영이 번역을 맡았다.

우주의 탄생과 사회적 질서, 전쟁의 참혹한 기록

빅뱅 이후 우주의 기원부터 인류 문명의 탄생과 인공지능의 등장까지, 거대한 역사를 '연결'이라는 키워드로 꿰뚫는 빅히스토리 저작이 눈길을 끈다. 과학적 사실에 실존주의 철학을 접목하여, 인류가 무엇으로부터 기원해 어떤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앞으로 어떤 미래를 이어갈지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 책은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세계화와 불평등의 문제까지 조망한다.

중앙집권적 권력 없이도 사회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법인류학적 관점에서 파헤친 고전도 있다. 사이먼 로버츠는 국가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해, 공식적인 법적 기구가 없는 공동체 내에서 인간이 분쟁을 해결하고 질서를 세우는 방식을 탐구한다. 친족 관계나 호혜성, 구성원의 평판과 같은 분권적 기제에 주목한 이 책은 한울아카데미에서 3만 3000원에 출간되었으며 이철우가 번역했다.

마지막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적인 시작점을 재조명한 역사서가 독자를 찾아온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그에 따른 영국·프랑스의 선전포고, 그리고 뒤이어 발생한 소련의 폴란드 분할 점령 과정을 상세히 다룬다. 연합군의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된 이듬해 5월 이전까지의 혼돈과 학살의 실상을 로저 무어하우스는 새롭게 조명한다. 일조각에서 3만 5000원에 출간된 이 책은 이승훈이 번역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