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급락 속 나타난 공매도의 기이한 후퇴
삼성전자가 21만 원 선까지 밀려나고, 200만 원대를 넘나들던 SK하이닉스 역시 127만 원대 중반까지 주가가 추락하며 시장의 충격이 커지고 있습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고대역폭메모리(HBM) 독점 공급과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시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냉각되었습니다. 연초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쏟아낸 200조 원 규모 매도 물량 중 80% 이상이 이 두 종목에 집중되면서, 코스피 지수는 5,500선 근처까지 미끄러지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패닉과 비관론에 잠긴 상황에서,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주가를 압박하던 공매도 거래대금이 한 달 사이 40%나 급격히 줄어든 것입니다. 전체 거래량 대비 공매도가 차지하는 비중도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으며, 공매도 잠재력을 나타내는 대차거래 잔고 역시 조 단위로 감소했습니다. 공격적인 하락 베팅을 이어가던 기관과 외국인 세력이 왜 이 시점에서 발을 빼고 있는지, 이번 주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와 주주환원 정책이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공매도 거래대금 40% 급감과 비중의 반토막 현상
한국거래소의 10월 1일부터 23일까지 데이터를 살펴보면 공매도 세력의 심리 변화가 수치로 드러납니다. 삼성전자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은 지난달 2,299억 원에서 이달 1,425억 원으로 38.0% 감소했습니다. SK하이닉스의 하락 폭은 더 컸습니다. 지난달 3,718억 원에 달했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이 이달 들어 2,175억 원으로 41.5% 급감했습니다. 이는 코스피 전체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대금 감소율인 13.0%와 비교했을 때, 반도체 양대 기업의 공매도 위축 속도가 시장 평균보다 3배 이상 빨랐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거래량 감소에 따른 착시가 아닙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일평균 공매도 거래량은 88만 2,479주에서 57만 6,743주로 34.6% 줄었으며, 거래 비중 또한 3.39%에서 1.95%로 하락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일평균 공매도량이 21만 2,398주에서 14만 3,527주로 32.4% 감소하며 비중이 4.27%에서 2.68%로 내려앉았습니다. 해당 기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각각 19.74%와 28.10%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주가가 급락할수록 하락 베팅의 강도가 약해지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된 것입니다.
하방 여력 소멸과 숏커버링의 본격화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추가 하락 기대 수익률의 감소와 숏커버링(Short Covering)을 꼽습니다. 우선 주가가 이미 20~30%가량 급락한 상태라 추가 하락을 노린 공매도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판단입니다.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이 4배대, PBR이 1배 안팎인 역사적 저점 구간에서는 작은 호재에도 숏스퀴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높은 가격에서 주식을 빌려 팔았던 세력들이 수익 확정을 위해 주식을 되사들이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를 20만 원대 후반에 공매도한 투자자는 현재 21만 원대에서 상당한 차익을 얻을 수 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180~200만 원 선에서 진입한 포지션을 127만 원대에서 정리하며 30% 이상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구간입니다.
대차거래 잔고의 변화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삼성전자의 대차거래 잔고는 지난 7월 말 24조 8,339억 원에서 이달 23일 기준 17조 3,482억 원으로 줄어들며 석 달 만에 약 7조 5,000억 원의 물량이 감소했습니다. SK하이닉스 또한 9월 말 22조 5,717억 원까지 치솟았던 잔고가 10월 23일 14조 8,508억 원으로 7조 7,000억 원 이상 급감했습니다. 주가 하락에 따른 평가액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수천만 주 단위의 상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여, 기관들이 하락 포지션을 정리 중임이 확인됩니다.
3분기 실적 발표와 주주환원 정책의 향방
공매도 세력이 관망세로 돌아선 결정적 이유는 이번 주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와 컨퍼런스콜에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등 빅테크와의 HBM 공급 협상 결과와 내년도 메모리 및 파운드리 흑자 전망, 그리고 주주환원 계획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만약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주주환원 윤곽이 드러난다면 주가의 하방 경직성은 강화될 것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회사 솔리다임의 미국 상장 검토 중단 이후,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강력한 주주환원책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리츠증권 김선우 연구원은 이번 실적설명회에서 자사주 소각이나 특별배당 같은 파격적인 방안이 나올 경우 강력한 주가 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공매도 감소가 즉각적인 폭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닥을 다지는 과정은 지루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상승을 위해서는 외국인의 현물 순매수 전환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AI 설비투자 지속 여부, 고유가 악재, 미 연준의 금리 정책 등 대외 불확실성도 여전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낮은 가격에 몰입하기보다는, 이번 주 실적 발표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 수주 잔고와 주주환원의 규모를 냉정하게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공포의 정점에서 공매도가 먼저 멈춘 가운데, 시장의 신뢰 회복 여부에 자본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