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편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오헬스 분야의 핵심 사업들은 오히려 예산 삭감과 신규 과제 축소, 연구비 집행 지연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한 범부처 첨단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의 경우, 부처 간 분담금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줄어들면서 내년도 신규 과제 규모가 절반 수준으로 급감할 위기에 처했다. 국가 기술 경쟁력의 핵심인 의사과학자 양성 예산 역시 감소세를 보였으며, 한국형 ARPA-H 사업은 연구비 지급이 늦어지며 과제 착수 자체가 지연되는 등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의료기기 국산화 동력 상실 우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임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범부처 첨단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의 2027년 신규 과제 수는 당초 65개를 목표로 했으나 정부 예산안 기준 33개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필수의료기기를 국산화하려던 과제 역시 5개에서 2개로 축소될 전망이다. 해당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협력해 2026년부터 2032년까지 7년간 총 8383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기 6종 개발과 13종의 필수의료기기 국산화를 목표로 지난해 8월 예타를 통과했으나, 산업부의 분담금이 계획했던 367억7200만원에서 199억8000만원으로 167억9200만원이나 깎이면서 사업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산업부는 이번 예산 감소가 사업의 중요도나 성과 때문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부처 내 예산 한도 내에서 배분을 진행했으며, 부족분을 기획예산처에 추가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임문영 의원은 국정과제인 첨단 의료기기 R&D가 사업 2년 차부터 예산 부족으로 인해 신규 과제를 절반밖에 시작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생명과 직결된 국산화 연구가 뒤로 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국회 예산 심의 단계에서 분담금을 다시 증액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재 양성 예산 삭감과 연구 지연

미래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한 예산도 줄어들었다. 글로벌 의사과학자 양성 R&D 예산은 2026년 1013억8400만원에서 2027년 844억4800만원으로 약 16.7%인 169억3600만원이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사과학자가 핵심 성과를 내기까지 20년에서 30년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연구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예산 확보와 별개로 집행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드러났다. 보건의료 난제 해결을 위한 한국형 ARPA-H 사업은 사업관리자 선발과 과제 기획이 지연되면서 연구비 지급이 늦어졌다. 2024년 사업 첫해 예산 495억원 중 10월 말까지 집행률은 54.5%였으며, 실제 연구기관에 전달된 금액은 65억4900만원에 불과했다. 복지부는 연말 기준 집행률이 90%에 달했다고 설명했으나, 사업의 안정적 출발에는 의문이 남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R&D를 지원하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