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화재와 이주 지연에 발목 잡힌 구룡마을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 공급 물량을 늘리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주요 사업 현장에서 주민 이주와 토지 보상, 개발 계획을 둘러싼 충돌이 잇따르며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강남구 구룡마을은 연이은 화재로 인한 잔여 주민의 이주 문제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고, 서초구 서리풀지구는 임대주택 비중과 보상안을 두고 갈등이 깊어지는 중이다. 강서구 염창근린공원 역시 녹지 공간 상실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사업 재검토 요구가 거세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등에 따르면, 지난 27일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91가구, 총 12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 1월 16일 대형 화재로 129세대 181명이 거처를 잃었던 사건에 이은 추가 피해다. 주민 이주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재가 반복되자 이재민 주거 지원과 남은 주민들의 이주 대책이 시급한 현안이 됐다. 이에 서울시와 강남구, SH는 이재민에게 7일간의 임시 숙소를 제공한 뒤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한 지원책을 마련 중이며, 국토교통부는 LH 임대주택을 2년간 무상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다.
1970~1980년대 서울 동남권 개발 및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형성된 구룡마을은 무허가 판자촌이다. 서울시는 2012년 도시개발구역 지정 후 2014년 해제했다가 2016년 재지정하여 SH를 통한 공공 주도 개발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12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개발계획 변경안이 조건부로 통과되었고, 올해 7월에는 주요 공동주택 블록의 통합심의도 마쳤다. 이곳에는 신혼부부용 '미리내집' 1691가구, 통합공공임대 1107가구, 공공·민간분양 941가구 등 총 3739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보상 갈등과 녹지 훼손 우려에 가로막힌 공급 계획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 내로 주민 이주를 끝내고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건설에 들어갈 방침이다. 그러나 기존 거주자 1107가구 중 약 140가구가 여전히 이주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재개발 이후의 분양권 확보나 지역주택조합 설립 등을 요구하며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SH는 이미 지난해 8월 토지와 물건에 대한 보상 및 수용 절차를 완료해 소유권을 가졌으나, 미이주 주민들을 상대로 한 명도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SH 관계자는 명도소송 절차를 고려해 일정을 짰기 때문에 내년 하반기 착공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서초구 서리풀 1·2지구에서는 보상 절차를 앞두고 토지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그린벨트를 해제해 약 2만 가구를 공급하는 이 사업에서 정부는 전체의 55%인 1만 1000가구를 '미리내집'으로 채울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대책위원회는 별도 임대 물량까지 합치면 임대 비율이 80%에 달한다며, 이를 35%로 낮추고 공공분양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달 30일 토지보상계획 공고와 함께 12월 중순까지 감정평가사 선정이 진행될 예정인 가운데, 토지주들은 재산권 제약에 따른 양도소득세 면제도 함께 촉구하고 있다.
권영은 서리풀1지구 토지주 총주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높은 임대 비율이 사업비 부담을 키워 결국 토지 보상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된다며, 주민 요구가 반영되면 협조하겠다고 전했다. 대책위는 29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타 사업지 대책위와 공동집회를 열어 임대 비율 조정과 양도세 면제를 요구할 계획이다. 또한, 1000가구 공급이 예정된 강서구 염창근린공원 사업도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5만 1000㎡ 규모의 공원을 주택지로 개발해 2029년 착공한다는 계획이지만, 주민들은 교통 혼잡과 녹지 훼손을 이유로 사업 재검토를 주장하며 지난달 설명회도 무산시켰다. 권대중 한성대 교수는 정부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며, 갈등을 고려해 사업지별로 속도를 조절하고 일정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