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지능화, 시민의 삶과 직결되어야

인공지능(AI) 기술이 도시 운영의 근간을 뒤흔드는 가운데, 기술의 진보가 실제 지역 사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이 담긴 저서들이 주목받고 있다. LX한국국토정보공사 공간정보연구원의 배성훈 그룹장이 총괄 집필한 'AI가 도시를 만났을 때'는 AI가 교통 체계부터 재난 대응, 행정 서비스, 안전 관리 등 도시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룬다. 이 책은 단순히 기술 도입의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첨단 기술이 시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고 있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배 그룹장은 앞서 전자책으로 발간한 '반도체 공장은 1.5년, 전선은 10년'을 통해서도 기술과 인프라의 괴리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강원 동해안의 발전소 및 송전망 문제를 통해 대한민국 첨단산업이 직면한 취약한 연결 고리를 조명했다. 두 저작물 모두 기술적 발전만큼이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운영 체계와 지역사회의 특수한 여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데이터 중심의 스마트시티를 넘어선 AI시티

'AI가 도시를 만났을 때'는 스마트시티에서 AI시티로 진화하는 과정을 시민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하여 설명한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 확인부터 교통 정체 예측, CCTV 영상 관제, 폭염 및 폭우 등 기상 재난 대응, 에너지 관리, 도시 계획 및 행정 업무에 이르기까지 AI가 침투한 광범위한 영역을 상세히 기술한다.

특히 저자는 도시의 지능화 정도와 시민의 복지 향상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센서와 데이터를 확충하여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자체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동 시간이 단축되었는지, 재난 상황에서의 안전이 확보되었는지, 그리고 기술 도입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게 돌아가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별 격차와 AI 책임 소재의 중요성

이러한 관점은 수도권과 다른 환경을 가진 강원 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도시의 교통 체증 해소를 위한 기술과 인구 감소 지역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기술은 적용 방식과 목표 설정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역별로 상이한 데이터 확보 능력,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인력, 유지관리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또한 AI의 판단에 대한 책임 소재와 검증 절차를 확립하는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룬다. 교통신호 제어, 영상 관제, 도시계획의 대안 추천 과정에서 AI가 수행한 역할을 투명하게 기록해야 하며, 오류 발생 시 이를 검토하고 수정할 수 있는 체계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시민이 AI의 결과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AI 정책 수립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산업 전략과 전력 인프라의 시간차 극복

전력 인프라 문제를 다룬 '반도체 공장은 1.5년, 전선은 10년'에서는 강원 동해안의 전력 문제를 국가 산업 전략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반도체 공장은 비교적 빠르게 건설할 수 있지만, 대규모 전력을 전달할 송전망 구축은 입지 선정부터 인허가, 보상, 주민 수용성 확보 및 소송 과정을 거치며 막대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현실을 '1.5년'과 '10년'이라는 수치로 대비시켰다.

동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이 문제는 매우 현실적인 현안이다.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로 인한 환경적 부담과 주민 갈등은 지역 사회가 짊어져야 하는 반면, 그로 인한 경제적 결실은 첨단산업계로 집중될 수 있는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산업 단지 조성과 전력망 확충을 별개의 사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의 투자 일정에 맞춰 전기와 용수가 적기에 공급될 수 있도록 통합적인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동해안 송전망 문제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격상시켰다.

배 그룹장은 전력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기가 없으면 AI도 없다'라는 전자책을 추가로 출간하기도 했다. 한양대학교에서 정보기술경영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현재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춘천시와 동해시의 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으로서 강원 지역의 AI 전략 수립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