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난 생태계 시간표가 불러온 멸치 위기

지난 10년 사이 국내 멸치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한 원인으로 바다 생물들의 활동 시기가 서로 어긋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강정훈 박사 연구팀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의 남해 연안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온 변화와 식물플랑크톤의 양, 해파리 출현 양상, 그리고 멸치 어획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정밀 분석했다. 연구팀은 수온 상승과 함께 노무라입깃해파리의 조기 출현, 식물플랑크톤의 감소 현상이 멸치 어획량의 변동을 일으키는 핵심 요인임을 29일 확인했다고 밝혔다.

해파리 조기 출현과 멸치 산란기의 충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대량 발생하는 시점이 기존 9월 말에서 8월 중순으로 약 1.5개월가량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봄과 여름철에 대마난류가 유입되는 양이 늘어나면서 해파리의 이동 시기가 빨라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해류의 흐름이 강해지면서 해파리가 남해 연안에 도착하는 시점이 앞당겨진 것이다. 특히 2014년 이후에는 해파리가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와 멸치가 알을 낳는 산란기가 겹치는 빈도가 높아졌다. 해파리와 어린 멸치는 모두 동물플랑크톤을 먹이로 공유하는 경쟁 관계일 뿐만 아니라, 해파리가 멸치 알이나 갓 부화한 치어를 직접 잡아먹는 포식자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먹이사슬 기초 무너진 멸치 생태계

멸치 먹이사슬의 근간이 되는 식물플랑크톤의 증식 규모 역시 점차 위축되는 추세다. 통상적으로 봄과 여름에 대량 증식하는 식물플랑크톤의 증가세는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크게 둔화되었으며, 가장 활발하게 늘어나는 시기 또한 늦여름으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6~7월경에 집중되는 멸치의 산란기와 식물플랑크톤의 증식 시기가 서로 맞물리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어린 멸치들은 생존에 필요한 먹이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천적이자 경쟁자인 해파리를 더 일찍 마주하게 된 셈이다.

급감하는 어획량과 수산자원 관리의 과제

이러한 생태계 변화는 실제 어획량 감소로 직결되었다. 7월에서 12월 사이의 멸치 연평균 생산량을 살펴보면, 2010~2013년 11만 3700톤에 달하던 수치가 2017~2020년에는 8만 5010톤으로 약 25%가량 급락했다. 멸치는 고등어와 같은 주요 어종의 핵심 먹이원이기에, 멸치 자원의 감소는 다른 수산자원 전체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연구팀은 어획량이 어업 활동 등 여러 변수에 영향을 받으므로 해파리와 식물플랑크톤의 변화만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정훈 박사는 해파리의 출현 규모와 더불어 그 시기적 변화가 어획량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며, 향후 수산자원 관리 시 해파리 출현, 식물플랑크톤 증식, 멸치 산란의 계절적 변화를 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