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핵심 거점, 100m 높이의 거대 팹이 솟아오르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세에 발맞춰 경기도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 기지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21일 확인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P5 건설 현장은 서울 여의도 면적과 맞먹는 289만㎡ 규모의 광활한 부지 위로 70여 대의 타워크레인이 쉼 없이 움직이며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다. 2015년 P1 착공을 시작으로 P2부터 P4까지 4개의 생산 시설이 이미 가동 중인 이곳은 현재 P5 팹1과 팹2 건설을 통해 초격차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P5 팹1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핵심 생산 거점으로 낙점되었으며, 내년도 HBM 물량은 이미 완판된 상태다.
이번에 건설 중인 P5 팹1은 기존의 '더블 팹' 구조를 넘어선 '트리플 팹' 방식으로 설계되어 그 규모가 더욱 거대해졌다. 건물의 바닥 면적은 남북 211m, 동서 638m에 달하며, 층을 하나 더 쌓아 올린 구조 덕분에 완공 시 높이는 약 100m에 육박해 33층 아파트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클린룸과 공조 설비가 포함된 한 개 층의 높이만 30여m에 달하는 만큼, 전체 연면적은 축구장 200개를 수용할 수 있는 145만㎡ 규모로 확장된다. 이러한 고층 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기초 콘크리트 두께를 대폭 늘리고, 지반 유실을 막기 위해 45m 깊이까지 말뚝을 박는 등 보강 작업이 철저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삼성물산의 특허 공법인 경량 일체형 기둥(LFC)을 적용해 구조적 견고함을 더했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현장, 1만 5천 명의 근로자가 만드는 신화
P5 건설 현장은 하루 평균 1만 5,00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어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다. 골조 공사와 형틀 작업이 한창인 가운데, 협력업체 D사의 이모(34) 팀장은 새벽 4시 반에 현장에 도착해 5시 툴박스미팅(TBM)을 시작으로 강도 높은 일과를 보낸다. 인력들이 3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공사를 이어가고 있어 현장의 불은 밤새 꺼지지 않는다. AI 인프라에 대한 투자 열풍으로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공기를 단축해 하루라도 빨리 가동하는 것이 곧 기업의 이익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최모(46) 반장 역시 아파트 현장보다 일감이 많고 연장 근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현장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 및 보안 관리도 매우 엄격하다. 사고 예방을 위해 구역을 그린존, 옐로존, 레드존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자재 이동 시마다 경고 사이렌을 울려 주의를 환기한다. 또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 대책도 철저하다. 모든 근로자는 안면 홍채 인식을 통해 신분을 확인해야 하며, 휴대폰에는 카메라 기능 등을 차단하는 보안 애플리케이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특히 국가 기간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해 외국인 근로자의 투입을 엄격히 제한하며 정보 및 기술 유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 심화 속 K-반도체의 기술 격차 유지 과제
현재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가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어 긴장감이 높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여전히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고 분석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제조 노하우와 우수한 인재, 안정적인 양산 역량이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도전 정신의 뿌리는 1983년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의 반도체 사업 진출 결단에 있다. 당시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기흥 공장을 6개월 만에 완공했던 저력은 이제 평택의 거대한 트리플 팹 건설로 이어지고 있다. 2028년 3분기 P5 팹1이 완공되면 하루 출입 인원만 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 인프라를 구축하며 미래 AI 시대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