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공지능(AI) 선도 기업인 앤트로픽이 다음 달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상장 신고서를 제출하며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알렸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상장신고서(S-1)를 통해 공개된 재무 지표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매출과 영업이익 면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으나 동시에 8000억 달러가 넘는 막대한 인프라 투자 약정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일반 주주의 경영 참여를 제한하는 독특한 지배구조가 향후 기업가치 산정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폭발적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의 명암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앤트로픽은 나스닥 상장을 위해 종목코드를 'ANT'로 확정했다. 앤트로픽은 2021년 오픈AI를 떠난 7명의 창업자가 'AI 안전성'을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 설립한 곳이다. 이들은 창업 멤버 전원이 경영에 참여하며 인류의 이익을 위한 책임 있는 AI 개발을 사명으로 내걸고 있으며, 이러한 철학이 우수 인재를 모으고 장기적 연구에 집중하는 토대가 된다고 강조했다.
재무적으로는 눈부신 성과가 확인됐다. 지난해 46억 달러였던 매출은 올해 9월 누적 기준 33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설립 5년 차인 이 회사의 직원 1인당 매출은 660만 달러에 달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다만 1분기 대비 2분기 매출이 두 배 이상 뛰었던 것에 비해, 2분기에서 3분기 사이의 증가율은 50% 수준으로 다소 완만해졌다. 또한 상위 5개 고객사가 전체 매출의 25%를 점유하고 있고,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을 지출하는 고객층이 250곳에 불과해 특정 고객에 대한 의존도와 성장 정체 가능성도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다. 2025년 1분기에는 매출 1달러를 얻기 위해 2.5달러 이상의 비용을 썼으나, 2026년 2분기에는 이 비용을 0.5달러 미만으로 대폭 절감했다. 실제로 올해 6월 말까지의 3개월간 영업이익은 10억 달러로, 전년 동기 12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8%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는 클로드(Claude) 모델을 차세대 학습에 활용하는 등 컴퓨팅 자원 효율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며, 매출 대비 컴퓨팅 지출 비율도 지난해 상반기 201%에서 올해 상반기 55%로 급감했다.
2045년까지 이어지는 천문학적 투자 계획
하지만 장기적인 투자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앤트로픽이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확보를 위해 맺은 계약 규모는 8000억 달러를 상회하며, 일부 계약은 2045년까지 지속된다. 앤트로픽은 컴퓨팅 능력을 사업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으며, 창업자들은 이러한 투자가 초기에는 무모해 보일 수 있으나 대담하면서도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살펴보면, 브로드컴과 5년간 161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어 AI용 텐서처리장치(TPU)를 공급받기로 했으며, 2028년부터는 TPU에 150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AMD와도 200억 달러 이상의 거래를 약정했으며, 향후 규모를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옵션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스페이스X와는 2029년까지 최대 1205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으며, 관련 설비가 가동되는 올해 12월부터는 월 이용료가 약 31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향후 10년간 최소 2694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었으며, 엔스케일 및 람다와도 최대 860억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러한 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기존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앤트로픽의 기업가치가 2조 달러로 평가받을 경우, 아마존은 전환증권을 통해 약 20%의 지분(가치 4000억 달러)을 확보할 수 있으나 현재 지분 보유 한도는 12%로 제한되어 있다. 구글 역시 약 7%의 지분을 가진 상태에서 최대 2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거나 IPO의 주요 투자자로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스파크캐피털과 코튜 등 재무적 투자자들의 보유 지분 가치 또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조 달러라는 기업가치가 실제 시장에서 인정받을지는 미지수다.
경영권 통제와 AI 기술의 실존적 위험
앤트로픽의 지배구조는 일반적인 상장사와 판이하다.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장기공익신탁(LTBT)이 존재하며, 이 신탁은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등이 참여하는 수탁자를 통해 이사회 7명 중 4명을 선임하거나 해임할 권한을 갖는다. 다만 다리오 아모데이 CEO와 다니엘라 아모데이는 신탁의 해임 대상에서 제외된다. 창업자들은 특별 의결권 주식을 통해 50.1%의 의결권을 유지하며 경영권을 방어하지만, 신탁이 이사회를 좌우하는 구조와 이익 극대화와 공익 사이의 충돌 가능성은 투자자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기술적 위험에 대한 경고도 심각하다. 앤트로픽은 상장신고서의 92쪽을 할애해 AI가 초래할 수 있는 재앙적 위험을 설명했다. 악의적 사용자에 의한 무기 개발 가능성부터, AI 모델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은폐하거나 인간을 기만하는 등의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위험까지 언급했다. 이러한 위험은 보험업계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밝혔다. 더불어 미국 정부의 규제 변화와 국방부의 공급망 위험 지정 등 정책적 불확실성, 그리고 급격한 조직 확대로 인한 기업 문화 약화 가능성도 복합적인 위험 요소로 명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