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초 만에 결정되는 수평아리의 운명
숙련된 병아리 감별사의 손끝에서 생사는 순식간에 갈린다. 부화기 문이 열리고 컨베이어 벨트 위로 갓 태어난 산란계 병아리들이 쏟아져 나오면, 감별사는 이들을 하나씩 집어 뒤집어 항문을 확인한다. 좁쌀 3분의 1 크기 정도의 돌기를 찾아내 암수를 판별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수컷으로 판명된 수평아리들은 즉시 별도로 분류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수컷은 알을 낳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계처럼 살이 빠르게 찌지도 않아 경제적 가치가 낮기 때문이다. 결국 첫날 살처분하는 것이 가장 이익이라는 논리 아래, 수평아리들은 분쇄기에 던져지거나 질식사한다. 이들은 병들거나 못나서 죽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경제적 사정 때문에 '도태'라는 이름으로 살처분된다.
이러한 비극적인 관행은 1925년 일본에서 항문 감별법이 등장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1950년대에 산란계와 육계의 사육 방식이 분리되면서 하나의 산업적 관행으로 굳어졌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도축되는 동물은 닭이지만,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24년 통계에 따르면 785억 마리의 닭이 도축될 뿐만 아니라, 그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죽는 동물 역시 닭, 즉 수평아리다. 그러나 이 거대한 죽음의 숫자는 그 어떤 국가의 축산 통계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통계로 드러난 78억 마리의 살처분 실태
미국의 동물보호 연구단체인 파우널리틱스는 지난 8월, 국가별 수평아리 살처분 규모를 최초로 추산해 발표했다. 병아리의 암수 비율이 보통 1대 1이라는 점과 산란계 암탉의 교체 주기, 그리고 산란 전후의 폐사율 등을 종합적으로 계산한 결과, 2024년 한 해에만 무려 78억 3천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살처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도축된 돼지 수의 5배, 소의 26배에 달하는 경악스러운 수치다. 우리가 단 1초 동안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도 250마리의 수평아리가 목숨을 잃고 있는 셈이다.
유럽의 변화와 부화 전 성감별 기술의 등장
이미 유럽의 여러 국가는 이러한 비극을 멈추기 위해 법적, 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독일은 2019년 연방행정법원으로부터 경제적 이유가 수평아리를 죽일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으며, 이에 따라 2022년부터 수평아리 살처분을 금지하는 동물보호법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 독일 내 유통되는 달걀의 70% 이상은 부화 전 성별을 확인한 산란계가 낳은 것이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역시 각각 2022년과 2023년에 살처분 금지 대열에 합류했으며, 이탈리아는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스위스는 양계 업계가 자발적으로 살처분을 종결했으며, 노르웨이의 최대 축산기업 노르투라와 관련 협회는 내년 7월까지 배아 상태에서 암수를 감별하는 기술을 업계 표준으로 도입하기로 선언했다. 이노베이트 애니멀 에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유럽연합 상업용 산란계 사육 수의 40%가 부화 전 성감별 기술을 적용받고 있으며,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살처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부화 전 성감별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있다. 예를 들어 갈색란의 경우, 13일령 배아에 할로겐램프를 비추면 96%의 정확도로 수컷을 가려낼 수 있다. 또한 MRI를 활용해 계란 내부의 수컷 생식기관을 찾아내는 방식도 존재한다. 이렇게 선별된 수컷 알은 비료 원료로 활용된다. 이러한 기술 도입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호주 등의 농장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한국의 현실과 우리가 직면한 과제
반면, 세계적인 병아리 감별사를 배출하는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한국동물복지연구소는 2024년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한 해 약 5,000만 마리의 수평아리가 살처분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국내 도축된 돼지 1,872만 마리와 소 106만 마리를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다. 현행 동물보호법 제13조는 잔인한 도살을 금지하고 있으나, 수평아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부재한 상태다. 연구소는 수평아리 도태 규모와 부화장의 실태를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파우널리틱스는 살처분되는 수평아리의 약 70%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주요 국가인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감별사가 단 2초 만에 생사를 가르는 동안, 우리 사회는 이 죽음을 기록하고 직시하는 데 2년 넘게 머물러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삶은 달걀 뒤에는 78억 마리 수평아리의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며, 변화의 시작은 결국 소비자 개개인으로부터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