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상 성장이 가리는 민생의 그늘

서류상의 경제 성장과 국민이 체감하는 실질적인 삶의 질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 최근 발표된 한국의 경제 지표들은 수출 수익의 급증과 가계 자산의 정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양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증은 기업의 생산량과 이익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나, 이러한 성장의 결실은 소수의 수출 기업에만 집중되어 있어 국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7~9월 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1% 성장했으며, 이로써 올해 3분기까지의 누적 성장률은 3.6%를 기록했다. 실질 국내총소득은 전년 대비 18.8% 급증하며 1977년 이후 최대 상승 폭을 나타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 또한 4만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 실적 또한 경이적이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632% 폭증한 83조 3,300억 원($62.36 billion)을 기록했다고 수요일에 발표했으며, 삼성전자는 목요일에 전년보다 783.1% 증가한 107조 4,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보고했다.

쏠림 현상과 취약해진 민생 경제

이러한 막대한 이익이 전체 경제의 건전성을 대변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국내 지표는 훨씬 부정적이다. 해당 분기 민간 소비는 0.2% 감소했으며, 소비자 신뢰 지수는 약화되었다. 지난 9개월간의 월평균 고용 증가 폭 역시 최근 6년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소상공인들의 상황도 악화일로다. 산업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1.04%에 도달하며 기록이 시작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번 호황의 구조를 살펴보면 격차의 원인이 명확해진다. 최근 반도체 수출 증가분의 약 78%는 물량 확대가 아닌 가격 상승에 기인한 것이다. AI 인프라 경쟁은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막대한 가격 결정권과 기록적인 수익을 안겨주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가전 및 모바일 부문에서 8,000억 원의 손실을 입었음에도 반도체 부문이 거둔 수익으로 이를 상쇄했다. SK하이닉스는 80%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을 기록했으며, 2027~28년 생산 능력의 절반 이상을 장기 계약으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한 9월 전체 수출액의 거의 절반이 반도체에 집중될 만큼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한국은행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AI 지출이 줄어들 경우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며 성장률이 0.4%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용 불균형과 정책적 과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변동성은 중국 경쟁사들의 추격 속에서 수요 지속 여부에 따라 기업 가치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첨단 제조업은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작 한국에 필요한 속도로 일자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청년층의 비중은 2014~19년 3.5%에서 2023~24년 1.6%로 급락했다. 대기업이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고 중소기업이 투자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청년들은 자신들이 기여한 번영에서 소외되고 있다.

배당과 보너스가 소비를 일부 뒷받침할 수는 있으나, 그 이득은 여전히 소수 대기업의 주주와 임직원에게 집중되어 있다. 정부는 반도체 이외의 분야에서도 생산성을 높이고 투자를 유도해야 하며, 신규 플랫폼과 혁신 서비스의 확장을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노동 개혁을 통해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로 가는 통로를 열어주고, 대기업의 안정적인 직무와 타 분야의 불안정한 노동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동시에 취약 계층을 위한 공공 지원과 재교육을 강화하고, 가계 부채를 관리하여 소비 위축을 막아야 한다. 기록적인 이익과 GDP 성장은 분명한 성과이지만, 경제의 진정한 건강성은 그 결실이 가계와 중소기업으로 얼마나 확산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