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충격이 불러온 재창업의 결단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지난 13일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참솔 리턴제로 대표(42)는 2018년 회사를 세우게 된 배경을 이렇게 회상했다. 바둑을 아는 이라면 당시의 사건이 얼마나 비현실적이었는지 공감할 것이라며, 그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리턴제로는 독자적인 인공지능(AI) 음성인식 기술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통화 음성을 텍스트로 바꿔주는 '비토'와 회의 및 영업 상담 내용을 요약·기록하는 '콜라보'가 핵심 서비스다. 매출 규모는 2021년 1억 4400만 원에서 2024년 23억 4600만 원으로 3년 사이 16배가량 급증했으나, 15억 원을 기록한 지난해에는 잠시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 5월에는 컨택센터 전문 기업인 유베이스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아이폰이 예견한 모바일 시대와 첫 번째 도전

1984년생인 이 대표는 이번이 첫 창업이 아니다. KAIST 전산학과 02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불확실한 내일을 고민하던 평범한 공대생이었다. 그의 첫 도전은 2010년 국내에 아이폰이 상륙했을 때 시작됐다. 당시 대중은 스마트폰을 단순한 인터넷 기기로 여겼지만, 이 대표는 이를 세상을 바꿀 혁명으로 직감했다. 그는 모바일 결제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2011년 3월 대학 친구들과 함께 모바일 커머스 기업 '로티플'을 설립했다.

하지만 첫 창업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당시에는 휴대폰만으로 결제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컸고, 카드사를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느린 인터넷 속도와 복잡한 설치 과정도 걸림돌이었다. 결국 그는 그해 11월 로티플을 카카오에 매각했다. 비록 주식 중심의 불리한 조건이었으나, 카카오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결과였다. 이후 그는 카카오 광고사업부에서 근무하며 회사가 수천 명 규모로 팽창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AI 시대의 기회, 음성 데이터의 선순환에 주목하다

카카오가 급성장하던 2015년, 이 대표는 돌연 퇴사 후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은 그의 창업 DNA를 다시 깨웠다. AI 기술을 깊이 공부하며 인공지능이 세상을 재편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그는 음성 분야를 공략했다. 비대면 업무를 대체할 콜센터 시장의 가능성과, 한국어 음성인식 기술이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점을 기회로 포착했다. 사용자가 늘수록 데이터가 쌓여 정확도가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를 노린 것이다.

그는 로티플 시절의 동료들을 다시 모았다. 비록 음성인식 전문가는 부족했지만, 기술 트렌드가 머신러닝 중심으로 변하고 있어 신생 기업에게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리턴제로의 기술력은 현재 업계 최고 수준이다. 누적 음성인식 처리량은 1500만 시간을 넘겼고, 변환된 통화 데이터는 2억 건을 돌파했다. 1시간 분량의 녹음본을 38초 만에 처리하며, 0.3초 미만의 빠른 응답 속도를 자랑한다. 특히 문자오류율(CER)은 4.7%로 네이버, 구글, 오픈AI보다 낮다는 것이 회사의 설명이다. 비토의 누적 다운로드는 100만 건, 콜라보 도입 기업은 5000개를 넘어섰으며 누적 투자액은 248억 원에 달한다.

빅테크 독주 시대, 기술과 인프라의 결합

이 대표는 AI 시대가 과거 인터넷·모바일 시대와는 다른 '빅테크의 독주' 양상을 띨 것이라고 진단했다. 막대한 자본과 데이터를 가진 대기업과의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기술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네이버 클로바노트와의 경쟁에 대해서도 시장 주도권을 확보할 만큼의 격차를 벌리지 못한 점을 냉정하게 인정했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그는 지난 5월 유베이스 그룹에 합류했다. 음성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업 인프라를 갖춘 파트너가 필수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리턴제로는 유베이스의 컨택센터에 기술을 접목해 상담 분석과 업무 자동화를 구현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AI 시대에는 새로운 시장 창출만큼이나 기존 산업과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역량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