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의 이례적인 재정 정책 비판
한국은행 신현송 총재가 정부의 재정 운용을 향해 직설적인 비판을 던졌다.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수호하기 위해 정치권이나 정부 정책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 온 한국은행의 관례를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행보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신 총재는 재정 확대가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한다면 정책 간의 충돌로 보기는 어렵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질문을 피했다. 그러나 지난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를 냈다. 신 총재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일시적인 재원을 바탕으로 고정적인 지출 구조가 형성될 경우 이를 나중에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국회의 엄격한 심사 기능이 반드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금리 시대의 종말과 구조적 변화
신 총재의 이러한 발언은 취임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서 나타난 자신감의 발로라기보다, 급변하는 대외 경제 여건에 대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간담회에서 전달된 ‘매파적 동결’의 메시지는 향후 닥쳐올 경제적 난관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경고였다. 전문가들 역시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40년 장기 저금리 체제가 구조적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저금리 시대를 지탱하던 세계화 흐름이 꺾였고, 글로벌 공급망의 복원 또한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주요국들의 재정 건전성 악화와 AI 산업 주도권 경쟁에 따른 자본 조달 비용 상승이 맞물리며 경제 환경은 더욱 험난해지고 있다.
재정 적극주의와 미래대응기금의 모순
저금리라는 완충재가 사라진 시장에서는 작은 실수도 큰 충격으로 증폭될 수 있다.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프랑스가 그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저금리 시대의 관성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162조 원 규모로 편성된 미래대응기금이다. 세수 초과분을 미래 투자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기획예산처의 운영안은 의구심을 자아낸다. 45조 원의 투자 자금 중에는 일반 예산으로 수행 가능한 사업과 농어촌 기본소득 같은 현금성 지원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또한 104조 원에 달하는 여유 자금의 목표 수익률이 연 3.85%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10년물 국고채 수익률인 4.1%보다도 낮다. 재정경제부 내부에서 채무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실무 부처의 우려 섞인 목소리는 부처 협의 과정에서 묵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와 2분기 경상수지 흑자 확대로 인해 정부 내에 재정 낙관론이 팽배해진 결과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최근 SNS를 통해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배가 뜬다는 낙관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금리라는 중력과 다가올 썰물의 대비
반도체 산업의 호황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장에는 모든 자산 가격이 금리에 종속되어 있다는 냉정한 원칙이 존재한다. 글로벌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월가에서는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으며, 이는 반도체 주가의 약세로 이어지고 있다. 밀물이 지나면 반드시 썰물이 오듯, 현재의 낙관론에 매몰되어 경계심을 늦추기보다는 다가올 변화에 대비한 실질적인 전략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