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시스템 넘어 외부 연계망까지 보안 사각지대 확대

최근 한 달간 금융권 전반을 겨냥한 사이버 해킹 사고가 잇따르면서 기존 보안 체계의 한계점이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주요 거래 시스템에 보안 역량을 집중해 왔으나, 오히려 외부 연계 서버나 업무 지원용 시스템이 침해 사고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격 기법이 갈수록 지능화됨에 따라 단순한 사후 수습 방식으로는 피해를 차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공격을 자동화하고 취약점을 탐색하는 새로운 위협이 등장함에 따라, 보안 투자와 전문 인력 확충은 필수적이다. 사고가 터진 뒤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취약점을 사전에 찾아내 제거하는 선제적 방어 체계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요구된다.

금융감독원, 은행권 이사회와 간담회... “자율 방어체계 구축해야”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8대 은행지주 이사회 의장단과 간담회를 진행하며 금융권 IT 보안 대응력 강화를 주문했다. 이 원장은 최근의 침해 사고가 비핵심 시설로 공격 대상이 넓어지는 등 전방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AI가 해킹의 도구로 쓰이면서 보안 취약점이 쉽게 노출되고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일상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 스스로 IT 자산을 철저히 관리하고, 취약점을 능동적으로 식별해 없애는 자율 방어 시스템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해킹의 파동은 지난달 말부터 시작되어 은행권에서 보험사와 금융투자업계로 빠르게 번졌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에서 시작된 사고는 저축은행을 거쳐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하는 흐름을 보였다.

미래에셋생명·대신증권 등 잇따른 정보 유출 사고

피해 사례도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25일 미래에셋생명은 홈페이지와 고객 청약 시스템에서 이상 징후를 포착했으며, 26일부터는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한 채 복구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고객 정보 유출이 확인되었으나 정확한 규모와 항목은 조사 중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도 대신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침해 사고가 드러났다. 특히 대신증권은 지난 17일 해킹을 감지한 후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고객 3만 8490명의 정보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 유출 항목에는 이름, 이메일, 주소, 통신 ID, 은행명, 그리고 암호화된 계좌번호와 휴대전화번호 등 총 8개 항목이 포함됐다.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 역시 사내 모바일 그룹웨어 시스템에 외부 비인가자가 접근한 사실이 확인되어 조사가 진행 중이다. 금융보안원이 지난 한 달간 공유한 의심 인터넷주소(IP)만 700개를 넘어서는 등 공격 시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격자가 IP나 접속 경로를 수시로 변경할 수 있어, 단순히 알려진 IP를 차단하는 방식만으로는 방어가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안 패러다임의 전환... “비용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금융사들은 AI 기반 보안 기술과 제로트러스트 모델 등 새로운 체계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진화하는 공격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인력과 자원이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이찬진 원장은 IT 보안을 단순한 규제 준수 업무로 치부하거나, 보안 투자를 단순 '비용'으로 간주해 자원을 아끼는 행태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사고 후 책임을 묻는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연계 서버와 클라우드, 그룹웨어 등 업무 지원 시스템 전반에 걸쳐 사전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금융보안원을 중심으로 공격 징후를 신속히 공유하는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위탁업체까지 관리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사이버 공격이 일상화된 시기인 만큼 보안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차원의 보안 거버넌스 효율성을 높이고, 인터넷 서비스 전반에 걸쳐 체계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할 것을 제언했다.